나의 개딸, 비키와 엘리
여름이었다. 하루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린, 눅눅하고 습한 한여름의 기운을 그대로 머금은 채 집으로 돌아온 어느 여름. 내 정신과 육체가 깨지고 해어져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주저앉은 어느 날, 세상은 왜 이렇게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한 건지 알 수 없어 원인모를 분노가 차오르는 그런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소파에 길게 누웠다. 언제나 그러하듯 비키와 엘리는 내게 달려온다. 비키는 내 팔을 베고 누워 긴 주둥이를 내 목 옆으로 두고 고른 숨을 쉰다. 엘리는 옆으로 누워 살짝 구부린 내 다리 위에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잠을 청한다. 반려견 두 마리는 지쳐 돌아온 내게 자신들의 체온을 기꺼이 나눠준다. 밖에서 내가 무슨 일을 당했건, 얼마나 상처를 받았건 상관없이 한결같이 자신들의 곁을 내어준다. 아무런 말없이, 그저 따스한 눈빛만을 보내온다.
그렇게 잠시 고요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금세 회복하고야 만다. 작은 존재가 나누어 준 짧지만 강렬한 따스함으로 이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들을 품에 안고 눈을 감고 있으면, 오늘 내가 겪은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의미 없는 일에 타오르지 말자 생각하게 된다. 내 곁에 있는 존재의 소중함에 새삼 집중하게 된다. 내가 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코로나 시기를 지나왔는지, 사춘기 시기를 지나는 두 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 오로지 내 문제에만 머무르게 해 준다.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환기시켜 준다.
예전에는 내가 이 작은 존재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들이 전적으로 내게 의존하며 내가 없으면 이들의 생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으리라 단언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 여기며 착각 속에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동안 내가 이 작은 존재들에게 수시로 기대고 돌보아져 왔음을. 전에 없던 코로나로 오랫동안 자주 집에 갇혀 지냈을 때, 두 딸은 수개월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고, 온라인 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내 시간도 사라져 갔다. 나만의 시간이 메말라가면서, 나라는 존재도 희미해져 갔다. 나를 다시 찾고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이른 새벽 개 두 마리와 산책을 나서는 일이었다.
한여름에는 오전부터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에 해가 나오기 전에 집을 나섰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나뭇잎의 색을 살피고, 새로 피어난 길가의 이름 모를 꽃에 눈길을 주며, 매일 한 시간씩 걸었다. 산책로에서 만난 친구의 냄새를 맡는 비키와 엘리를 기다려주고, 잠시 쉬어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우린 함께 그 여름 새벽을 걸었다. 그렇게 하루치의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결국에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모두 그러했다.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느린 속도로 걷고, 상기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행복해했다. 봄에는 흩날리는 벚꽃비를 맞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고, 가을에는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렇게 변해가는 계절을 오롯이 느끼며 우리는 늘 함께였다. 함께여서 좋았고, 함께여서 충만했다. 언제나 말없이 기다려주는 존재, 언제나 한결같이 반겨주는 존재, 늘 내편이 되어주는 나의 작은 존재들이 가족이 된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에게 체온을 내어주며 남은 생을 함께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되어 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