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드러난 본심

by 달보


전역 후 휴학을 연장했다. 군인 아저씨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돌연 대기업을 박차고 호주로 떠난 사촌형의 영향으로 어학연수를 계획하게 됐다. 해외에 나가면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진다는데, 그게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다. 왠지 취직하고 나면 돈 벌기 바빠서 못 갈 게 뻔해 보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나이 제한도 있다길래, 갈 수 있을 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영어와 돈이었다. 군대에서 고참과 영어 스터디도 하고, 담배를 안 피워 월급도 꽤 모았지만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하고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알바 경험이 전무한 내가 맥도날드를 택한 건 근무 시간 조절이 자유로워서였다. 근무 포지션은 크게 카운터와 그릴이 있었는데, 조용한 성격에 낯선 사람을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그릴 파트를 지원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어여쁜 리본을 목에 단 채로 카운터에 서서 손님들에게 억지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아야 한다니,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게다가 평소 햄버거를 즐겨 먹지도 않아 거의 모든 메뉴가 생소했다.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나 빅맥은 이름만 들어봤을 뿐 맛은 몰랐다. 쿼터파운더치즈나 베이컨토마토디럭스 같은 메뉴는 포스기에서 이름을 찾는 데만 한참 걸렸다. 안그래도 정신없는데 옆에서 교육하던 트레이너는 손님이 들어오면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으며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크게 외치라며 거듭 강조했다. 매니저를 포함해 그 누구도 그렇게 웃으며 주문받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왜 나만 유독 그렇게 시키는 건지 억울했지만 꾹 참고 시키는 대로 따르며 겨우 버텼다.

이전 01화움직이는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