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자마자 복학해 빨리 졸업하려던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2년간의 군생활 동안 나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거나, 선후임과의 미묘한 줄타기를 하거나, 관물대에 옷 하나 넣는 것조차 칼각을 잡는 군대식 생활 때문만은 아니었다. 군대를 갔다 오면 사람 된다는 말은 반만 맞는 것이었다. 전역할 때까지도 여전히 쓰레기 같은 부류는 분명 있었으니까.
내가 복무하는 초소엔 '움직이는 도서관'이라는 책을 가득 실은 콤비차가 매주 한 번씩 들렀다. 처음엔 그 차가 오든 말든 관심 없었다. 그러다 상병이 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어느 날 문득 초소로 꺾어 들어오는 움직이는 도서관이 눈에 띄었고 자석에 끌리듯 그 앞에 서게 되었다.
처음엔 소설을 읽으며 재미를 붙였다. 이후에는 자기계발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땐 자기계발서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냥 제목이 그럴듯한 책을 골라 읽었을 뿐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자기계발서였다. 첫 자기계발서는 지독하게 재미없었다. 다시는 책을 안 보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책 속 문장이 언제 스며들었는지, 슬며시 내 안을 뒤집어놓기 시작했다.
한번은 고참이 뒷걸음질하다 내 이어폰을 밟아 부러뜨린 적이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책에서 본 ‘저건 내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또 살 빼기 힘들다던 동기에게 “그렇게 먹으니까 찌는 거지.”라고 말하려다가,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라’는 구절이 떠올라 “내일 나랑 같이 운동할래?”라며 말했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겐 기적 같은 변화였다. 그 이후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내 삶은 참 내세울 게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며 살았다. 가상 공간에서는 왕처럼 군림했지만 컴퓨터를 끄면 허탈감이 몰려왔다. 친한 친구도, 멘토가 되어줄 법한 인물도 주변에 없었다. 속으론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군 생활 중 만난 책은 그야말로 구원의 손길이었다.
책이 무슨 마법을 부린 건 아니었다. 책은 그저 다양한 본보기를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개과천선하기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독서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내 이름은 내가 아니다. 내 몸과 마음, 심지어 생각도 내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다 부자가 아니다. 은행은 더 이상 안전하게 돈을 보관해주는 곳이 아니다. 이런 건 누구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책을 읽을수록 게임 속 캐릭터가 레벨업하듯 나라는 인간의 경험치가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인정욕구가 강한 나로서는 그 맛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고, 침상 위에는 항상 책이 쌓여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 남는 시간은 모두 독서에 쏟았다. 신병들은 자기를 불러주지도, 괴롭히지도 않는 나를 오히려 무서워했다. 이윽고 하늘의 별처럼 까마득히 멀게만 보이던 전역날이 다가왔고, 나는 '이젠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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