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have facebook ID?"

by 달보


"Do you have facebook ID?"


브리즈번 시티에 있는 Lexis 어학원을 다닌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다. 쉬는 시간, 같은 반의 외국인이 불쑥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몇 번 목례만 나눈 사이라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운 마음이 더 컸다.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심심함도 달랠 겸, 영어 연습 상대가 생기면 좋겠다고 막연히 기대하던 참이었다. 그녀는 대만 사람이었고 나보다 두 살 많았다.


이후로도 같은 반 사람들과는 금세 가까워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어설픈 영어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즐거웠다. 특히 어머니 또래쯤 되는 일본 분이 유독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고, 점심엔 음식을 건네며 맛보라 권하기도 했다. 일본 학생들은 책상도 가지런하고 성격도 조용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다정한 온기가 느껴졌다. 또 어떤 일본 친구들은 패션 감각이 극과 극이라 흥미로웠다. 반짝이는 액세서리로 치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정하고 수수한 모습으로 시선을 끄는 이도 있었다.


한 달 뒤, 나는 중급반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여전히 찜찜했지만 어쩌면 그게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수업 중에 “넌 중급반으로 가야 해”라며 수차례 말하곤 했다. 초급반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았고 내 영어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진 않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중급반으로 가니 분위기가 달랐다. 대부분 중동 출신 학생들이었다. 첫날부터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소위 야동을 보여주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내 표정을 보고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고, 대답 들을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사진 앨범을 보여주며 가족을 소개했다. 수십 명이 모인 사진을 보며 말로만 듣던 일부다처제를 실감했다. 그는 헬리콥터 정비 엔지니어였고 국가 지원으로 단체 유학을 왔다고 했다. 그의 집은 알라딘에 나오는 궁전만 같았다. 과장이 아니라 비현실적일 만큼 광활하고 으리으리했다. 사람보다 큰 호랑이가 반려동물처럼 가족 옆에 붙어 있는 게 전혀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중급반에도 한국인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첫날, 학원 데스크에서 한국어로 말을 걸었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럴 리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후로 중급반에 있는 한국인들과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며 지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왜 그 형이 날 외면했는지, 왜 한국인들끼리 서로 거리를 두는지 조금은 감이 왔다. 대개 학생들은 점심시간이면 자기 나라 사람들과 모여 밥을 먹고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달랐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각자 흩어져 있었고, 한국 사람들끼리 말 섞는 일은 드물었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굳이 말을 섞지 않겠다는 듯, 여기까지 와서 같은 한국인과 어울리는 건 시간과 돈 낭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물론 예외도 있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잘생겼다고 느낄 법한 형과, 주변의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일 듯한 높은 텐션을 가진 누나와 셋이 어울려 지냈다. 덕분에 여러 나라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호주 생활은 더 재미있어졌다.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아 속상하긴 했지만, 그 외엔 모든 게 좋았다. 수업을 마치고 밝은 햇살 아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벤치에 앉아 끼니를 떼우는 사람들, 시청 앞 광장에서 스케이트보드나 BMX 자전거로 묘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신선한 장면들이었다. 이 중 진짜 호주 토박이는 몇이나 될까 궁금해질 정도로, 거리에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면 공원에서 파티가 열렸다. 잔디밭 곳곳에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그릴판이 있었다. 스테인리스 줄로 연결된 끌개가 매달려 있었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커다란 철판이 금세 달아올랐다. 그 위에 주로 고기와 소시지, 빵을 구웠다. 삼겹살과 라면은 한인마트에 가면 한국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대신 소주는 한국보다 거의 10배나 비쌌고, 술을 파는 'bottle shop'에서는 아예 팔지도 않았다(호주는 한국처럼 마트에서 술을 살 수 없고, 대부분 bottle shop에서 사야 했다). 병맥주 같은 유리병에 담긴 술을 야외에서 마시는 건 불법이었다. 그런 이유로 공원에서는 주로 와인이나 캔맥주를 마셨다. 때론 한국인들끼리, 때론 학원 사람들 수십 명이 어울리곤 했다.


그 모든 순간이 좋았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설렘만 남았다. 선생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나를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따뜻한 진심이 느껴졌다.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형들도 가족처럼 친절했다. 호주 생활에 도움될 만한 게 있으면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나서서 알려줬다. 한국 사람 기준으로 마트에서 뭘 사야 하는지 보여주겠다며 굳이 팔을 끌고 함께 가주기도 했고, 어떤 제품이 가성비 좋은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줬다. 룸메이트인 마스터형은 가끔 나를 차에 태워 걸어서 가기 힘들 법한 곳들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문득 그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그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괜스레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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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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