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생활에 완전히 젖어들 무렵이었다. 낯선 나라의 햇살과 느긋한 리듬에 익숙해지며, 한국에 두고 온 여자 친구에 대한 그리움마저 흐릿해질 즈음, 그 평온을 한순간에 깨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우연히 통장 잔고를 확인했는데 잔고가 거의 바닥났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삼촌이 쥐어준 용돈, 부모님과 할머니가 보태준 경비와 혹시 몰라 더 챙겨준 돈에 너무 의지했던 탓인지, 한동안 잔고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놀고 먹느라 바쁜 나머지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정도로 궁핍해지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물론 일자리는 구할 생각이었다만, 어학원 과정이 다 끝나고 여유롭게 알아볼 참이었다. 여비가 충분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은 모니터에 찍힌 잔고의 숫자는 마치 내게 "지금 당장 일자리를 구해야겠는데?"라며 비웃는 듯했다. 이대로라면 학원이 끝나기도 전에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게 뻔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티 근처로 거처를 옮긴 것이었다. 한적한 동네보다는 시티에 일자리가 많았다. 현지인 밑에서 일하면 시급이 훨씬 높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탓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영어를 못해도 몸이 재빠른 코리안(Korean)은 종종 현지인 밑에서 일할 기회도 생긴다는데, 왠지 내게 해당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 위주로 알아보다가 '탑스시(Top Sushi)'라는 곳에서 주방 보조를 구한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학원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 집에서도 가까웠다. 시급이 꽤 쏠쏠했고 업무 시간도 적당해서 바로 지원했다. 워낙 사정이 급해서 면접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며 되뇌었다.
간절한 마음이 통했는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방 뛸 정도로 신이 났으나 막상 면접 장소에 가서는 금세 풀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두세 명 정도가 경쟁 상대일 줄 알았건만, 직원 한 명 뽑는 데 면접자가 무려 10명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가게 2층에 30평대 아파트 거실 정도 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면접 보러 온 한국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급이 쏠쏠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인이 주는 시급치고는 상당히 높은 모양이었다.
순서가 되면 한 명씩 밑으로 가서 매니저와 면담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방 보조를 뽑는 일이라 영어를 필수로 요구하진 않지만, 이왕이면 영어도 좀 하고 사회 경험도 많은 이들이 뽑힐 거라 여겼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도 못했고, 키도 작고, 알바 경험이라곤 맥도날드가 전부였다. 하물며 주방에서 일해본 적도 없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계란 후라이와 라면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 뽑힌 사람은 바로 나였다. 이유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단순했다.
"그쪽이 나이가 제일 어려서요."
알고 보니 가게측은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을 원하고 있었다. 이전에 일하던 사람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말을 지지리도 듣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며 매니저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다른 건 다 안 보고 나이만 보고 뽑은 거라고 말했다. 운이 좋았다. 경력 면에서는 쥐뿔도 없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뽑힌 것이었다. 이후 학원 등록 기간은 보름 남짓 남아 있었지만,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에는 출근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위협받을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막상 일해보니 시급을 왜 높게 쳐주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듣기로는 브리즈번 시티 내에서 두 번째로 장사가 잘 되는 스시집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면접 때도 손님들이 바깥에 납작한 S자 모양으로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김밥이 잘 먹힌다는 게 온몸으로 체감됐다. 1층 카운터에는 한국인 직원 두 명이 계산과 쇼케이스에서 스시 내어주는 걸 담당했다. 주방에는 주방보조 한 명과 김밥 마는 사람 4명 정도가 있었다. 한참 바쁘면 매니저까지 들어와 스시를 가장한 김밥을 말았다.
내가 맡은 일은 밥 짓기, 튀김, 각종 재료 준비, 창고 정리까지 크게 네 가지였다. 키 크고 사람 선하게 생긴 형에게 일주일간 인수인계를 받았다. 설명도 차분하게 해주었고 막상 배워보니 일이 크게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외국인 손님을 상대할 일도 거의 없어 부담이 적었다. 식자재를 납품하는 분이 영어를 써서 조금 난감했지만 그 외엔 묵묵히 일만 하면 됐다.
힘든 건 모두 예기치 못한 데서 튀어나왔다. 튀김은 재료에 튀김옷을 입히고 튀김기에 넣기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해보니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튀김기에 넣을 때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예쁘게 넣어야 했고, 다 튀긴 걸 꺼낼 때 바닥에 눌러붙은 것들을 집게로 탕탕 쳐내야 했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번거로웠다. 집게가 부러지거나 튀김 바스켓이 망가지거나 둘 중 하나였고, 그럴 때마다 매니저는 눈에 불을 켜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직접 해보시든가, 라는 말이 목구멍에 수시로 차올랐다.
주방 보조 일이란 결국 시간 싸움이었다. 몸으로 힘든 건 기본이고 정해진 시간 내에 튀기고 재료를 준비해야 했다. 교대하는 형들은 느긋하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녀도 시간이 모자랐다. 특히 마감 때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마감이 늦어지면 퇴근도 늦어졌다. 추가 수당은 없었다. 마감을 일찍 하면 퇴근도 빨라졌기에 그 부분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기존 근무자들도 숙달돼 있어 마감 때문에 늦게 퇴근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초짜인 나는 마감 때만 되면 정신이 쏙 빠졌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혼자 남아 마감하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었다. 마감이란 기름때 묻은 모든 식기와 밥솥 등을 깨끗이 청소하고, 냉장고에 재료를 채우고, 튀김기에 더러운 기름을 비운 다음 새 기름을 채워놓는 등의 일이었다.
가만 보니 마감이 늦어지는 건 마감 자체가 아니라 그 전 단계 때문이었다. 바로 닭가슴살 재료 준비였다. 오전에 바쁜 일을 다 끝내고 시작하는 닭가슴살 손질에만 족히 3시간은 걸렸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라기엔 그 일을 넘겨준 형도 그렇게 오래 걸렸으니 단정짓기가 애매했다. 인수인계를 해준 형이 일주일 뒤 그만두고 나서도 한동안은 배운 대로 닭가슴살 손질을 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밖에 못하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방법을 찾으면 30분이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닭가슴살 손질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생살이 칼로 매끄럽게 잘리지 않아서였다. 설마 그만둔 형이 이 칼 저 칼 안 써보고 이 무딘 칼 하나만 썼을까 싶었지만, 마냥 확신할 수는 없었다. 주방에 있는 모든 칼을 써봤다. 조금 잘 썰리는 것 같긴 했지만 대부분이 워낙 낡은 상태여서 조금만 썰어도 날을 갈아야 했다. 결국 매니저에게 새 칼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주방에 칼이 저렇게 많은데 무슨 소리냐며 나무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줄 때까지 졸랐다.
마침내 답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었다. 날이 잘 선 새 칼을 산 것만으로도 준비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단축됐다. 전엔 두세 번 썰어야 했던 게 새 칼을 쓰니 한 번에 쫙쫙 잘렸다. 도중에 칼을 갈지 않는 것도 컸다. 그에 만족하지 않고 닭가슴살을 써는 방식도 조금씩 바꿔봤다. 가장 빠른 방법이 뭔지 재료를 준비할 때마다 몰래 연구했다.
결국 인수인계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3시간 걸리던 닭가슴살 손질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줄었다. 매니저는 엉뚱하게 작업한 게 아닌지 의심했지만 결과물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덕에 마감 작업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고 혼자 남아 일하는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재료 준비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 보상으로 시급도 1.5달러 인상됐다.
저렇게 독해야 이 바닥에서 매니저로 살아남을 수 있구나 싶을 만큼 매니저는 엄격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직원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사장님을 거의 볼 수 없었던 매장에서 매니저는 사실상 사장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인정받고 시급까지 올랐으니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보상이었다. 그후로 늘 쌀쌀맞기만 하던 매니저님은 어느새 가벼운 농담도 건네며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른 직원들 보기 민망할 정도로 대놓고 나를 편애하는 듯했다.
살다 보면 '이걸 이렇게밖에 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들이 있다. 그런 순간은 이상하게도 고민을 거듭할수록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찾게 된다. 물론 협업이 중요한 일일수록 개선을 핑계로 혼자 날뛰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늘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진취적인 성향이 내 안에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잠깐 스쳐간 알바였지만, 그 경험은 이후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는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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