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고수가 된 건에 대하여

by 달보


아침 7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브리즈번 시티로 향한다. 알바하는 곳까지 10분 남짓 걸어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풍경은 낯선 땅에 온 이방인이라는 현실을 실감케 해준다. 카페 테라스 의자에 앉아 아메리카노 한 잔과 신문을 보는 사람,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이 놓인 접시를 앞에 두고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는 사람,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들고 지나가는 샐러리맨, 멀끔한 작업복을 입고 안전경 너머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한 작업자들, 교복을 입고 어딘가로 향하는 학생들, 나처럼 유학 와서 돈을 벌고 있는 듯한 동양인들. 무심코 흘린 풍경치고는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처음 일할 땐 마귀할멈 같기만 하던 매니저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짓궂게 굴면서 내게는 잘해줬다. 그녀의 호의가 부담스럽지만 썩 싫지는 않았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경력이 몇 년씩이나 되는 김밥 마는 누나들도 나를 유독 귀여워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 이상하게 보던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속깊은 고민도 털어놓아 당황스러울 때도 적지 않았다. 형들과의 사이는 더할나위 없었다. 룸메이트들과도 가지 않던 한식당을 형들과 자주 갔다. 한국 돈으로 15,000원쯤 하는 소주가 알바를 하다 보니 그리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식당에서 한잔 걸치기만 하면 술값이 최소 10만 원 이상 나왔는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조금 거하게 술자리를 치르면 그 정도는 얼추 나왔던 것 같았다.


알바 도중 빌딩에 딸린 지하 창고를 드나들 때마다 가끔 인사하는 외국인 청소부와도 안면이 슬슬 트여갔다. 몸은 좀 고됐지만 하는 일에 비해 페이가 셌으니 일할 맛이 났다. 어? 하면 금세 퇴근 시간이 다가올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갔다. 퇴근해봤자 해가 여전히 중천에 떠 있을 때라 여유가 넘쳤다. '한국에 가족과 친구들만 없으면 진짜 여기 눌러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퇴근하면 공원을 산책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정처 없이 도심 한복판을 걸었다. 'Love St'라는 표지판이 세워진 골목길을 멀리서 한참 들여다보기도 하고, 언덕을 올라가면 마치 신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도시 풍경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얼핏 보면 모두 엇비슷한 건물 같아 보여도 걸으면서 하나씩 들여다보면 저마다 가지각색의 모양을 자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저긴 대체 어떻게 들어가는 곳일까', '저런 곳에는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과연 여긴 사람 사는 곳이 맞을까', '이런 곳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영어만 능통하다면 집집마다 쳐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히 호주 현지인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나의 도파민은 보금자리인 쉐어하우스에 가서도 끊이질 않는다. 나를 제외하면 남자 4명, 여자 2명과 함께 사는 집인데 하나 같이 모두들 사이가 좋았다. 서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각별한 사이는 없었지만, 서로 맘 편히 와인을 곁들이며 수다를 떨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내가 잠깐 정신이 팔려 농장에 갔다가 식겁하고 돌아오는 동안 새로 들어온 사람도 나와 결이 잘 맞았다. 그 형을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기존 사람들과 마셨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와인을 마셨다. 덕분에 아침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통을 감수해야했지만.


영어 실력이 늘기는 좀처럼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말고는 대부분 괜찮았다. 그러나 좀처럼 순탄하게 흘러간 적 없던 삶은 기나긴 겨울잠을 끝낸 곰처럼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 있는 여자 친구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호주 생활 초반만 해도 한 시간에 몇 번씩이나 근황을 전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호주 생활에 적응할수록 메시지가 오는 간극이 늘어났다. 다툼이라도 있었다면 납득이라도 하겠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요즘 좀 바쁜가 보다 하며 애써 넘기면서도 마음 한켠이 찝찝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반나절에 연락 한 통이 올까 말까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국제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보통 그 지경이면 무슨 일 있냐고 닦달할 법도 한데, 실은 그런 간단한 말조차도 할 수 없는 덫에 걸려든 상태였다.


'요즘 연락이 너무 뜸하지? 미안해 신경 쓰이게 해서. 진급하고 일이 많아지니 생각보다 너무 바쁘네. 하다보면 적응하고 그땐 아마 괜찮아 질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사랑해'


딸기 농장에서 고된 일과 도박과 마약에 찌든 룸메이트들 사이에서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여자 친구 연락까지 뜸해지던 터라 우울증이 극에 다다르고 있을 무렵, 늦은 밤 뜬금없이 그녀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였다. 안 그래도 그녀와의 관계에 이상 신호를 한참 전부터 감지하고 있던 터라, 내내 불안에 떨고 있던 와중에 그녀가 그런 내용을 보내왔으니, '그럼 그렇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못 믿다니'라는 자책감이 들면서 얼마나 안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되려 그게 훗날 나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줄은 그 당시엔 꿈에도 몰랐다.


차라리 그런 문자를 받지 않았으면 좀 더 나았을까. 아무리 연인이 반나절에 카톡 한 통 할까 말까여도, 너무 바빠서 힘드니 연락이 뜸해도 이해해달라는데 어찌 닦달할 수가 있을까. 얼마 전 안심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히려 그녀의 연락은 더 뜸해졌다. 어떤 날은 하루에 한 통도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텀이 늘어진 것뿐만 아니라, 그 내용조차 애정이라곤 메말라버린 듯한 단답이었다.


'아직 많이 바쁘지?'

'응.'

'오늘 전화할 수 있어?'

'아니.'


알고 보니 그녀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는 '우리 사이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증명서'가 아니라, '관계의 종말을 암시하는 예고장'이었다. 그녀와 교집합을 이루던 것들이 하나둘씩 해체되는 데서 비롯한 상실감은 생에 얽힌 모든 의욕을 앗아갔다.


광활한 하늘, 멋드러진 빌딩, 그 사이를 누비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모두가 잿빛 필터를 덮어쓴 것처럼 칙칙하게 보였다. 마음은 점점 작아졌고, 생계만 아니었으면 알바도 진작에 그만뒀을 정도로 삶에 대한 의지가 빠르게 소멸해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퇴근하면 영혼 잃은 자의 본색을 드러내며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았다. 인적 드문 곳에 놓인 외로운 벤치를 발견하면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밤하늘에 달이 뜨면 그녀의 마음을 돌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호주에서 몇 달 동안 즐겁고 알차게 지낼 수 있었던 건,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그녀와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내 삶에서 퇴장한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룸메이트도, 나를 예뻐하는 매장 누나들도, 세상 보는 시야가 넓어질 거란 기대도 모두 뒷전이었다. 그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주가 팽창하듯 넓어지던 내 세계관을 단숨에 축소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데스노트(Death Note)'에서 주인공 키라 앞에 느닷없이 하늘에서 노트가 떨어지듯, 어느 날 내 손에는 론다 번의 『시크릿(Secret)』이라는 책이 들려 있었다. 그 책의 요지는 이랬다. "온 마음을 다해 원하면, 온 우주가 그렇게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웃어넘겼겠지만, 그때 나는 그 문장에 처절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정말 그 책에 쓰인 대로 간절히 바라면, 이미 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그녀의 존재가 다시 또렷해질지도 모르니까.


한날 온몸으로 안아도 반도 감싸지 못할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가득한한 드넓은 잔디밭 공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걸 미리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구름 하나를 정해 구멍이 뚫릴 때까지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내가 응시하던 자리에 도넛 모양으로 구름이 갈라지며 그 너머의 하늘빛이 드러났다. 신기해할 틈도 없이 눈을 감고 속으로 본심을 되뇌었다.


'그녀의 마음이 돌아왔다'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뜸하던 연락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 주문 같은 생각을 조용히 곱씹었다. 그것도 모자라 포스트잇에 그 문장들을 적어 옷장 벽면 가득 붙여놓고 매일 바라봤다. 그걸 보며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미소를 지었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잘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즈음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한창 방송 중이었다. 쉬는 중 잠깐 거실에 나왔을 때, 드라마 '시크릿 가든' OST에 수록된 '그 여자'를 가수 더원(The One)이 부르고 있었다. 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난 순식간에 매료되었고 그날 이후 하루 종일 그 노래를 한 곡 반복으로 틀어놓고 지냈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산책할 때도 그 노래만 들었다. 가사가 마치 내 얘기만 같아서.


책 『시크릿』에서 말하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었을까. 처음엔 호기롭게 믿고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지는 빠르게 소멸되어 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가 돌아오길 바라며 최면을 걸고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허튼 짓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구쳤다. 그녀가 진정 돌아오길 바란다면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머나먼 나라에서 연락도 안되는데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나 한 걸까, 라는 막막함에 넋놓고 있던 시간들이 아깝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플룸에서 혼자 지내는 형 방에 놀러 갔을 때였다. 노트북으로 무슨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형, 뭐해요?"

"여자친구 생일 선물로 PPT 만들고 있어."


듣자마자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지금 내 심정을 고스란히 담은 PPT를 만들어서 그녀에게 메일로 보내면, 혹시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한국에서 함께 찍은 사진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얼마만큼이나 성장했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며, 또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슬라이드에 잘만 담아내면 왠지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파워포인트를 단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PT'와 'PPT'가 같은 말인지조차 헷갈려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해보기로 했다. 텍스트와 사진 넣는 정도는 금방 익혔고, 형에게 애니메이션 효과 넣는 방법만 간단히 배우고 나서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 전까지는 일이 끝나면 거리를 방황하거나 와인에 취해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PPT 작업을 시작한 후로는 그 모든 시간들이 오롯이 작업에 쏟아졌다. 거실 식탁에 앉아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쉐어하우스 사람들은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종종 토닥여주기도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헤어지자는 말만 오가지 않았을 뿐, 사실상 끝난 관계나 다름 없었다. 하루에 연락이 한 번 올까 말까였고, 그마저도 '응', '아니' 같은 단답뿐이었으니까. 그때의 우리 관계는 자주 입는 셔츠의 실밥 하나에 겨우 매달린, 곧 떨어질 단추와도 같았다.




완성된 PPT는 슬라이드가 무려 120장이 넘었다. 비록 슬픈 계기로 만든 것이지만 다 만들고 나니 묘하게 뿌듯했다. 큰일을 해낸 듯한 성취감도 있었다. 내가 봐도 '이걸 보고도 감정이 안 흔들리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싶을 만큼 자부심이 들었다.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하려던 찰나, 마침 룸메이트 형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었다. 궁금한 마음에 완성본을 시범 삼아 보여줬다. 잠시 후 조용히 흐느끼더니, 이내 식탁에 엎드린 채 펑펑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남몰래 쾌감을 느꼈다. 내용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도 이럴진대, 막상 PPT의 주인공인 그녀가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니 괜히 설렜다.


그러나 시크릿의 저주라도 받았는지, 나는 간절히 원하는 것일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신 확인이 된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메일은 물론이고 카톡으로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PPT를 만들 때의 생동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멍든 가슴 한켠이 숨 쉴 때마다 저릿하게 쑤셔왔다. 호주에 온 목적 같은 건 이미 뒷전이었고, 나는 매일 같이 그녀의 빈자리 주변을 맴돌며 헛된 망상에 시달리곤 했다.


결국 난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급히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0.01%의 가능성에 기대어 선물 몇 개를 챙겨 귀국하자마자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우리가 남남이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는 아무 설명도 없이 담담하게 이별을 통보했다. 이거라도 가져가라며 건넨 선물에도 무심하게 손으로 밀어 치우고는 돌아서 가버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훗날 복학한 뒤, PPT 과제를 할 때마다 그때의 경험 덕분에 손쉽게 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멀끔한 슬라이드를 넘기며 발표할 때마다 교수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자료를 잘 만들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어김없이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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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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