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요? 제가요?

by 달보


휴학 후 군대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는 동안, 나는 스스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낄 만큼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해리포터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 친구들이 앞다퉈 책을 읽을 때 분위기에 휩쓸려 한 권쯤 집어들긴 했지만, 몇 페이지 읽다 덮을 정도로 독서엔 관심이 없던 내가 군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평생 꿈꿔본 적도 없던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오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변화가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뭐 군인 아저씨가 되기 전에도 학교생활을 게을리 하진 않았다만, 복학을 앞두고 있을 땐 마음가짐이 전혀 달랐다. 단지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다기보다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왠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학하면 어린 동생들 사이에서 어색해하거나 뒤처진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조차도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었다면, 실내디자인 전공에서 필수인 2D, 3D 프로그램 사용법을 대부분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Auto CAD(캐드)'와 '3ds Max(맥스)'라는 프로그램은 과제를 수월하게 해내기 위해 꼭 익혀야 할 도구였다. 아무리 참신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의도가 있어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컴퓨터 툴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다행히 1학기라도 다녀보고 군대를 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프로그램을 다를 줄 모르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지 미리 겪어봤기 때문이다.


경험상 교수님들은 이론에는 강했지만, 프로그램 사용법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을 듣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원하는 모양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훨씬 더 많은 연습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복학 전 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비용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복학 후 뒤처지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는 게 필수라고 생각했다.




기초 캐드 강의실에 들어서자 양쪽 벽면을 따라 10대 남짓의 컴퓨터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다. 앞쪽에는 뽀로로를 닮은 강사님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고, 나는 수업을 열심히 듣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몇 번 다뤄본 경험이 있어서 처음엔 수업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강사님의 또렷한 발음과 정확한 발성은 아나운서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왔고,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강사가 되려면 저 정도의 전달력은 기본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일주일쯤 지나니 점점 난관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강사님 컴퓨터와 연결된 대형 스크린을 보며 설명들을 때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 것 같다가도, 막상 예제를 직접 따라해보면 좀처럼 시원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보여준 걸 그대로 따라 하는 건 할 만했지만, 배운 기능을 응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건 어려웠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수강생들도 비슷한 것 같았다.


복학 전에 툴을 미리 익히려 온 나와 달리, 강의실에는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듣자하니 회사에서 프로그램을 배우라고 하며 학원비를 지원해주는 듯했다. 세상에 그런 회사가 있다니, 당시로서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훗날 내가 들어갈 회사도 그런 복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힘들게 번 내 피 같은 돈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니 부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강의실에 빈 자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결석자들 중 대부분은 회사에서 보낸, 자기돈으로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강의를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났음에도 기본적인 단축키조차 외우지 못했다. 강사님을 보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너무 어렵다며 투덜거리는 걸 보니 한심해 보였다. 기초 과정인 만큼 하루하루 배워가는 게 중요한데 출석한 날보다 결석한 날이 많으니 당연히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울 수밖에. 나름 간절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던 내눈에 그들의 투덜거림은 어린 애들이 징징거리는 수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학원을 다니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그날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다. 강사님이 알려준 기능을 완벽히 익히진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집에 가서 연습이라도 할 텐데, 몇 번을 반복해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날이면 온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누가 말만 걸어도 짜증이 날 만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원래 나는 모르는 게 있어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궁금한 게 생겨도 부끄러워서 쉽게 묻지 못했다. 내가 말을 걸면 강사님의 흐름을 끊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방해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날의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할 때마다 생각 이상의 데미지를 입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단전에서부터 없던 용기를 끌어내어 강사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진작에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막상 질문을 하니 강사님은 아이에게 설명하듯 눈높이를 맞춰 천천히,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갈수록 썰렁해지는 강의실에서 내 자리만큼은 언제나 차 있어서 그 부분을 좋게 보신 듯했다.


숙제 같은 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매일 주어지는 예제 프린트물이 있었는데, 수업 시간 안에 그걸 다 풀지 못하면 집에서 혼자 해보는 게 암묵적인 과제였다. 내가 쓴 돈 이상의 결괏값을 얻어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예제만 주어지면 어떻게서든 집에서라도 다 풀었다. 희한하게도 집에서 연습할 때가 학원에서보다 공부가 더 많이 되는 것 같았다. 끙끙 앓다가도 모르는 게 있으면 구글링으로 어느 정도 해결도 가능했다(네이버 검색은 무용지물이었다). 시작하기까지가 상당히 어려울 뿐, 집에서 하는 공부는 오히려 학원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쌤, 예제 더 없어요?"

"벌써 다 풀었어요? 이제 더 없지 싶은데..."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이 점점 그만두거나, 꾸준히 나오는 이들도 내 실력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걸 보며 얄팍한 우월감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매일 주어지는 예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어느 정도 기초 숙련도가 쌓이고 혼자 쓸데없이 열 받아가며 끙끙 앓다 보니 요령이 많이 늘었는지, 이젠 응용하는 것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사님이 그날의 예제를 주면 금세 끝내고는 더 어려운 걸 요청하다 보니, 준비된 한 달 과정의 예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끝내버렸다. 강사님은 예제가 부족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수업에서는 강사님의 설명을 듣기만 하는 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생소한 툴을, 직접 해보지 않고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것만큼 지루한 게 없었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중요한 건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이었다. 학원 수업에 그치지 않고 집에서 30분만이라도 연습하면, 심지어 학원에서 했던 걸 반복하는 것조차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학원 수업만 듣고 끝내는 건 비싼 학원비를 허투루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사님이 쉬는 시간에 갑자기 로비로 불렀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불안과 설렘이 오묘하게 뒤섞인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잠시 후 내앞에 강사님과 함께 나타난 사람은 본인을 교육부장이라며 소개했다.


"혹시 강사 알바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강사요? 제가요?"


그즈음엔 방학 시즌이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강생에 비해 강사 인력풀이 모자랐던 관계로 다른 강사분들에게 학생 중 알바할 만한 사람이 없냐고 물었더니, 다들 하나같이 나를 추천했다며 짧게라도 해줄 수 없냐고 묻는 것이었다.


듣는 순간 손사래부터 치고 싶을 만큼 부담스러웠다. 내가 강사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나 역시 기초부터 배우겠다고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입장인데, 도대체 누굴 가르치라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도 꽤 컸다. 왠지 지금이 아니면 평생 강사라는 걸 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고, 꽤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아 그 제안이 더욱 끌렸다.


교육부장님은 내 표정을 보더니 안심하라는 차원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다른 쌤들 청강 몇 번 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게 하실 수 있을거다, 들어보니 캐드는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던데 치호씨가 아는 만큼만 설명해주면 된다, 교육 커리큘럼은 우리가 다 제공하겠다, 라는 식으로. 결국 마음이 기울어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이후 기초 캐드 강습 과정 자료가 한가득 담긴 프린트물과 파일을 건네받았다. 첫날 강사님이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떠올리며, 나는 이 내용을 어떻게 쉽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다른 강사님들의 강의를 몇 번 청강해보기도 했다. 확실히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아서 말해주는 것만 들을 때와는 달랐지만 기대만큼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알바 제안을 괜히 받아들였나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해지는데, 시간은 야속하게도 더 빨리 지나가는 듯했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건 자신 있었지만 이걸 어떻게 잘 풀어서 설명할지, 혹시나 미숙한 진행으로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그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대망의 첫날이 다가왔다. 흰색 린넨 셔츠로 수강생 신분을 숨겼다. 예제하는데 까지만 잘 넘어가보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역시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는 없었다. 그나마 사람들의 시선이 내쪽이 아니라 강의실 벽면에 달려 있는 대형 스크린쪽으로 향해 있어서 다행이었다. 잘 정리된 강습 자료 덕분에 말이 조금씩 트이면서 서서히 적응해가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수업 들었을 때 어떤 부분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지,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기 바랐는지를 떠올리며, 그런 부분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갔다.


개념 설명이 끝난 후 예제 풀이를 몇 번 보여주고 나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비록 나를 가르친 강사님처럼 물 흐르듯 깔끔하게 진행은 하지 못했지만, 망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학생 신분에서는 모르는 게 있어도 선뜻 손 들어 물어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상기하며 내내 강의실을 쓸데없이 맴돌았다. 겉으론 잘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들도 가까이 가면 조용히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뭔가를 알려줄 때면 금방이라도 자리를 떠나겠다는 듯이 서서 말하지 않고, 눈높이를 최대한 낮춰 마치 같은 시선에서 대화하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마 나의 강사님도 이런 방식이 학생들 입장에선 더 좋은 것인 줄 알았을 테지만, 일종의 매너리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거치느라 지친 마음에 가만히 앉아 계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나는 스치기만 해도 상처 입을 것만 같은 상태였고, 어떻게서든 사람들의 신임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그 정도의 성의를 보였던 것뿐이다. 아마 나도 강사를 직업으로 삼았다면, 나중엔 먼저 다가가서 알려주기는커녕 그 시간에 쉬는 쪽을 택했을 터였다.


오전에 강의를 끝내면 강사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셔츠를 벗고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뭔가 형언하기 힘든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수업 내용과 더불어 강사님의 제스쳐나 수업 진행 패턴 같은 것들도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사와 수강생을 오가는 이중 생활을 약속된 두 달동안 차질없이 진행했다. 마침 학원에 등록한 수업도 다 끝나가던 참이었다. 우려와는 달리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정식 강사 제안을 받았지만 고민 없이 거절했다. 복학하면 강사일과 공부를 병행할 자신이 없기도 했거니와, 얄팍하게나마 체험해 본 강사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강의 준비 때문에 밤을 지새운 날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1을 가르치려면 최소 2~3은 알고 있어야 했고, 그건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알바 제안을 받아들인 건 잘한 일이었다. 뭔가를 배우는 사람보다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공부가 된다는 걸 몸소 체감한 값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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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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