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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출간 제안은 하지 말아주세요

by 달보


새벽 4시, 알람이 울렸다. 어차피 화장실 가서 인증샷을 찍으면 알람을 끌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두 손 두 발 다 든 마음으로 책상 위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리고 화면을 터치했는데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뚫는, 혹여 잠을 1시간을 채 못 잤더라도 정신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문자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바로 브런치를 통해 날아온 새로운 제안, 그것도 '기타'가 아닌 '출간·기고' 목적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대체 어떤 글을 봤길래, 무슨 책을 내자고 출간 제안을 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얼른 메일을 열어봤다. 그동안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하면서 웬만한 출판사 이름은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출판사 이름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 아래 몇몇 단어를 보고는 이내 풀이 죽어버렸다.


'자비 출판'

'30만 원부터 시작'


심지어 예전에 예약 판매를 내세우며 마치 기획 출판인 양 행세했던 자비 출판 OOO북스에서의 경력을, 이 메일을 보낸 사람은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이력은 200% 마이너스인데. 혹시 그런 점을 알면서도 '아무나 낚여라'는 전략인 걸까.


메일을 다시 읽어보니 내 글과 관련된 내용은 5%도 안 됐다. "브런치에 연재된 작가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라는 단 한 문장이 전부였다. 무슨 글을 읽었는지, 왜 내게 제안을 한 건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런 내용을 넣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이미 자비 출판 제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심기가 불편했는데, 내 글엔 별 관심도 없고 오직 본인의 자비 출판이 얼마나 다르고 좋은지에 대한 설명만 줄줄이 이어졌다. 전형적인 상술 같았다. 진정성보다는 판매 전략이 앞서는 느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이런 식으로 출간 기획서를 써서, 투고 메일을 보낼 때마다 퇴짜를 맞는 건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제목과 콘텐츠, 출판사 기획 방향과의 결이 맞지 않은 게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 생각이 아주 일리가 없진 않아 보였다.


사실 자비 출판인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말의 희망을 품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부끄럽지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출간에 대한 열망이 간절하단 거겠지. 그럼 바라기만 할 게 아니라 독자들이 정말 읽고 싶어 할 만한 글을 써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이럴 때마다 글 쓰는 목적을 상기한다. 내가 글을 쓰는 건 오로지 출간만을 겨냥해서가 아니라, 그냥 쓰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나는 글 쓰는 행위 그 자체를, 그러니까 따뜻한 전구색 조명이 있는 공간에서 노트북을 세팅하고,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내 생각을 텍스트로 옮기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하는 것이니,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어쨌든 덕분에 뜻밖의 반성을 하게 됐고, 오늘의 새벽 기상은 비교적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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