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적으로는 전혀 시간이 나지 않는 게 아닌데, 틈새 시간을 활용하면 꽤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도, 생각처럼 현실에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박약한 내 의지 탓도 있겠고, 요즘 들어 글쓰기가 유난히 힘들어진 탓도 있겠고,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알게 모르게 에너지가 빠져나가서일지도 모른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글 좀 쓰겠다고 하면 아내는 언제든 그러라 할 사람이지만, 나는 그런 아내의 성향을 까맣게 잊은 듯이, 혹은 모르는 척하는 듯이, 집에 있으면 글쓰기를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평소엔 잘 자지도 않던 낮잠을 자거나, 아이 옆에서 노는 둥 마는 둥 누워 있거나, 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 새벽 네 시쯤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당장 끄고 다시 자고 싶었지만, 화장실에 가서 인증샷을 찍기 전에는 강제 종료도 되지 않는 무자비한 어플을 깔아놓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짐을 챙겨 카페에 나가기 위해 양치도 하고 세수도 했다. 그러나 방에 들어가서는 그대로 다시 누워 잠들었다. 꼭 미라클모닝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처럼, 그런 습관을 한 번도 들여본 적 없는 사람처럼, 나는 원래 그렇게 게으른 사람이란 걸 그냥 받아들이고 평생을 그렇게 살 것처럼.
그래서 나왔다. 일주일 만인가. 카페에 와서 글을 쓰는 게. 늦었지만 한 시간이라도 쓰고 자야 내일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새벽에 다시 잠든 건 도저히 잠을 참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는 일이 두려워서였다. 분명 써야 할 건 있는데, 퇴고하거나 쓰다 만 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정작 뭘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이상한 기류가 온몸에 퍼져 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듯한, 불쾌한 느낌. 되새기기만 해도 꺼림칙하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두서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체 모를 내면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그럴 줄은 몰랐는데, 글을 쓰고 나서 거의 처음으로 '글쓰지 않는 나'를 떠올려봤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아주 편할 것 같았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출근하고, 쓰지 못한 글에 대한 걱정 없이 일에 집중하다가, 퇴근 후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잠들면 그만이니까. 맘 편히 쉬지도 못할 만큼 글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그런 현실이 실제로 일어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이미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까. 아주 잠깐은 편하겠지만 손가락은 근질거릴 것이고, 마음은 어딘가 수렁에 빠진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다시 이전처럼 형태 없이 흘러갈 것이 뻔하다. 나는 원래 지금 같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비록 지금은 이렇게 글쓰기 고민을 토로하고 있지만, 요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기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읽고 쓰는 날들의 누적이 없었다면 결코 닿을 수 없었을 그런 세상.
내 눈에 내 글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처음 올렸던 글을 어쩌다 가끔씩 볼 때면 당장 삭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유치하고 오만하고 허황된 말투가 가득하다. 그런 걸 보면 나는 분명 여러모로 달라졌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래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갔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가끔 지난날들이 그립다. 그때는 지금처럼 글쓰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이,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었으니까. 비록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니라, 어디선가 들은 사견을 내 것처럼 착각하고 쓴 글이었다 해도.
나는 어쩌면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이제야 뒤를 돌아봐야 할 시기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고질병이다. 한 번 발동 걸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에 부딪힐 때까지, 혹은 스스로 방전할 때까지 무리하는 건.
지금 내가 벽에 부딪힌 건 기대가 크기 때문이고 그만큼 바라는 게 많아서일 것이다. 애초에 넘을 수 없는 벽을 굳이 넘으려고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벽을 굳이 넘을 필요는 없는데. 그냥 옆으로 돌아가면 되는 그만일 텐데. 그런 걸 알면서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걸 보면 아직 글을 덜 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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