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굳이 글을 쓰는지 생각해봤다

by 달보


매일같이 글을 쓰고,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습관처럼 굳어서, 안 쓰면 허전해서 같은 이유들이 떠오르지만 딱히 납득되지는 않는다. 이유를 붙이려 들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긴 하지만, 이유 없이 하는 일이 오히려 더 진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설명을 붙일 필요는 없으니까.


며칠 전 글쓰기 방에서 '글쓰기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었는데 그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무심코 흘려보냈었다. 그런데 그 주제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될지도 모르니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무의미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의지의 표상'


갈수록 삶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애초에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릴 적엔 부모님의 바람대로 한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조금 더 자라서는 안정된 직장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인생의 정답처럼 느껴졌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들은 대부분 내 안에서 나온 신념이라기보다 사회가 주입한 관념에 가까웠다. 그나마 마음 깊이 와닿았던 말은 고(故) 신해철님의 말이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난 것으로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아이를 돌보고, 아내와 담소를 나누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투자하는 일상은 사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마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DNA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했다기보다는 타고난 성향과 기질, 그리고 사회적 환경 속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물론 원한다면 그런 삶의 방식조차 언제든 거부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가든 상관없는 것, 그게 어쩌면 삶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는 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삶에 조금 더 충실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는 건, 별 의미 없는 듯한 삶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며 재미를 붙이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는 건, 한 여자와 한 아이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서 관계의 평화를 위해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는 건, 혹시 내가 이 세계를 다시 경험하게 될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나고 싶으니, 먼지 같은 기록이라도 남김으로써 나름의 이바지를 하겠다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렇게 숨을 내쉬며 자판을 두드리는 이 순간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주의 수명이 다하기 전까지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한 번의 기회가 어쩌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르니까. 지금 딛고 선 이 땅 위에서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고 싶어진다. 글을 쓰면 쓸수록 더 많이.


이를테면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책임지는 경비 아저씨의 손짓이라든가, 당최 경계를 짚을 수가 없는 황금빛 노을이라든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해맑게 웃는 아내와 아이의 미소라든가.


결국 내게 글을 쓴다는 건 그냥 태어난 김에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이왕 태어났으니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CONNECT

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쓰기, 글쓰기,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