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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도 좋은데 저축만한 게 없더라

by 달보


돌고 돌아 요즘 자주 가는 곳은 동네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는 조그만 미용실이다. 그 흔한 네이버 예약도 되지 않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예약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곳에 갈 때면 마음을 크게 먹어야 했다. 혹여나 말 상대가 없다면 원장님의 무자비한 수다 폭격을 직접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 1초라도 말을 쉬지 않는 분이었다. 대체 그렇게 쉬지도 않고 말을 하면서 머리는 어떻게 그리 잘 자르시는지, 선수는 선수였다.


머리를 잘 자르지만 여전히 '고정 미용실'이라고 생각지 못하겠는 이유는 온라인 예약이 안 된다는 점과 머리 자르는 동안 말상대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 미용실에 오늘 퇴근하고 들렀다. 딸랑 종소리를 들으며 문짝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소파에 아주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다.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정작 대화는 그분과 나누지 않고 있어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고 내가 자리에 앉자 화두의 불씨는 내게로 번졌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주식과 돈벌이었다.


"혹시 주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주식 좋아해요."


"어 정말요? 혹시 미장 뭐 이런거 하세요?"

"아, 저는 한국 주식은 안 해요."


미용실을 하며 만나는 손님들과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분이라 그런지 얇고 넓은 잡지식이 많았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과 재테크 관련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즐기자는 마음으로, 어차피 이분과 내 주변 사람들과의 접점은 1도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내비쳤다. 단일 종목이 아니라 ETF에 투자하고 현재 수익률이 꽤 좋다는 것, 부동산 시장은 안 좋게 본다는 것, 그리고 재테크도 좋지만 저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까지도.


주식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쪽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은행이 대략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면서부터였다. 사람들이 맡긴 돈을 은행이 어떻게 활용하는지와 물가가 어떻게 오르는지를 알고 나니 은행에 온전히 돈을 맡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주식 공부를 할 때 ETF(상장지수펀드)라는 시스템을 접했고, 아무리 주식을 잘 몰라도 왠지 그건 직감적으로 안전하고 괜찮은 상품 같아서 투자를 해봤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성과가 좋다 보니 그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날 따라 ETF에 투자한 아내의 수익률은 시중 은행 적금 이자율을 훨씬 웃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어 나쁘지 않은 수익률을 보고 있는 만큼 부각되는 건 바로 저축의 중요성이었다. ETF 특성상 갑자기 치솟거나 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주식 앱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얼만큼의 현금이 통장에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벌어 꾸준히 저축한 자산은 그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각종 불안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주는 장치와도 같았다. 경험상 저축은 '1+1=2'가 아니라, '1+1=2+@'였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물론 저축은 쉽지 않다.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피 같은 돈으로 여기저기 투자하진 않을 테니까. 내 생각에 저축의 관건은 극한의 절약이나 적금 같은 장치가 아니라 소비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본다. 소비가 크지 않을수록 월급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저축이 쉬워지는 건 덤이다. 소비할 때 잇따른 감정은 다른 활동으로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 독서와 글쓰기가 그렇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재테크는 거의 필수이지만, 이성적인 소비습관과 저축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반 없는 재테크는 모래성을 쌓는 일과 다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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