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일은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기대 이상으로 메인에 노출도 자주 되고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독자가 한 천 명쯤은 되어야 제안 같은 걸 받아볼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일찍 와서 내심 놀라기도 했다. 아직까지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을 찍을 만큼의 커다란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습니다'라는 알림은 여전히 단어만으로도 설렘을 안겨준다.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까지 브런치를 통해 총 4개의 제안이 들어왔다.
첫 번째 제안은 AI 맞춤형 뉴스플랫폼 '헤드라잇'이라는 앱을 운영하는 '빅펄'이라는 회사에서 창작자로 글을 연재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처음엔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뻐서 내용을 읽지도 않고 수락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쁜 마음도 잠시 브런치에 투자하는 에너지를 분산하고 싶지는 않았던 마음이 강했기에 경계심을 갖고 천천히 살펴봤다. 다행히도 담당자와 얘기를 나눠 보니 글을 업로드하는 조건이 자유로웠고, 브런치에 올린 글을 올려도 상관없었기에 제안을 수락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브런치와 함께 글을 연재 중에 있으며 구독자도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이제 2년이 넘은 스타트업 회사이긴 하지만, 훗날 규모가 커진다면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제안은 도서리뷰 제안이었다. 도서리뷰 제안은 오히려 안 오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겐 따분함과 지루함을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쓸 때 하루에 한 권씩 읽고 한 편의 독후감을 올렸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책리뷰라고 하면 이미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 그리고 난 정독을 고집하는 편이 아니다. 느낌이 오지 않는 책이면 더 이상 읽지 않고 덮는 편이다. 다른 읽을 책도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서평제안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으면 양심적인 글을 써야만 했기에 내용이 별로인 책이라도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야 했었다. 책도 그렇게 읽으니 멀미할 것만 같았다. 독서를 많이 하다 보니 읽힐 것 같은 책은 몇 페이지만 훑어봐도 금세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제공받은 책들 중 절반 정도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도서리뷰를 단칼에 거절한 두 번째 이유는 일단 나부터가 책리뷰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접었던 가장 커다란 요인 중 하나다. 책을 그렇게 사랑하는 나조차도 책리뷰, 서평 같은 걸 단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난 책이든 영화든 궁금하면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하는 편이지, 나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남들의 생각과 평가엔 관심도 없고 그만큼 그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이다. 그런 내가 책리뷰를 쓴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진정성을 담을 수 없는 작업은 재미와 성의가 붙지 않았다. 양심적으로 하면 안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도서리뷰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제안 메일을 보자마자 거절했다.
네 번째 제안은 이 브런치북을 쓰고 있는 와중에 받은 한 달에 2회 글을 연재해 달라는 제안인데, 브런치 글쓰기에 영향을 미칠 것 같으면 거절할 생각이다. 재밌는 건 세 번째로 들어온 제안이었다.
브런치에서 새로운 제안 알림이 도착하면 제안 목적이 함께 적혀 있다. 그동안 내게 들어왔던 제안은 모두 '기타 목적'이었다. 난 책을 내고 싶었기에 항상 '출간/기고 목적'으로 제안이 들어오라며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바라던 출간 목적의 새로운 제안이 진짜 들어와 버렸다. 그 알람을 본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당장 와이프에게 달려가 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메일을 열어보니 내가 그동안 브런치에 올렸던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보자는 제안이었다. 다만 기획출판은 아니었고, 반기획 출판에 전자책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처음엔 출간할 생각이 있단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했다. 드디어 나의 첫 책을 써 본다는 사실에 이미 신이 난 상태였다. 그렇게 계약에 대한 내용과 좀 더 디테일한 출간 프로세스를 질문한답시고 메일을 조금 더 주고받았다. 근데 그 과정에서 살짝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읽어보는 메일마다 꼭 AI가 답장을 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필체가 너무 딱딱하고, 짧았다. 중요한 내용을 간결하게 확실하게 표현하는 건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과는 결이 다르게 터무니없이 짧았다. 성의가 없다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게 크게 호의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등한 입장의 대우가 아니라 마치 어떤 대단한 기회를 부여하는 자로서의 권력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미세하게 찝찝했던 기분은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일에 말리고 있다는 확신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관계로 답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고민이 깊어지는 동안 그 출판사에서 출간했다는 전자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싹 다 뒤져봤다. 잠시 훑어보던 나는 진작에 자세히 알아보지 못한 나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출판사가 찍힌 전자책들 중에는 출판관계자가 전혀 아닌 내 눈에도 편집의 흔적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책들이 많았고, 20페이지도 안 되는 책마저 있었다. 프롤로그나 작가 소개가 없는 책도 있었다. 마치 온라인에 업로드된 글을 묶어 모아서 전혀 다듬지도 않은 채 출간만 한 듯 같아 보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모든 책들의 표지디자인이 심각하게 별로였다. 그때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다. 내 소중한 글을 그런 범주 안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출판사 측에서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출간을 없었던 일로 하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출판사 사장인지 편집자인지 직원인지도 모르겠는, 알고 보니 본인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았던 사람이 보낸 메일을 열어보니 '매우 좋은 기회를 줬고, 물어보는 질문에 답변도 해줬는데 반응이 없다는 이유로 기분 나쁘다며 출판을 진행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난 그 메일을 보자마자 계약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내가 답장을 하지 않고 있던 시간은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뭐가 그리도 급한 건지, 결코 가볍지 않은 결정 앞에서 고민을 하는 게 그렇게도 기분 나빠할 일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영 찜찜했던 찰나에 알아서 먼저 계약을 없던 일로 정리해 줘서 오히려 고맙기도 했다. 그렇게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했던 출간에 대한 꿈은 거품처럼 사라졌지만, 그 웃픈 해프닝은 '원고를 제대로 완성해서 출판사에 투고를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게 된 시발점이 되었다. 이 모든 글도 그때 받은 자극 때문에 쓰기 시작했다.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얼마나 공감이 가는지 모른다. 출간 목적으로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을 땐 좋은 일인 줄 알았더니, 메일을 주고받는 사이 왠지 발을 들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가, 막상 일이 엎어지고 나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동기부여를 자극받은 덕분에 이런 글이 나오게 됐으니 말이다. 인생은 참 살고 볼 일이다.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좋다, 나쁘다로 단정 짓기엔 너무 많은 연결고리와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 왜 시대의 현자들이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