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Mar 28. 2024

혼자 있는 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특히 읽고 쓸 때는 더욱이나


글쓰기모임이 불발되는 바람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번개모임이라도 열어봤다. 다행히 아무도 신청하지 않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 포함 네 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중 두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한 분은 나와 형제처럼 함께 자란 사촌동생과 이름이 같았고, 한 분은 꽤나 트렌디한 분위기를 풍기는 형님뻘 아재(?)였다.


독서모임이라 해도 책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의외로 만나보기 힘들다. 지역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몇 번 참가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인정하는 부분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이 만나게 된 두 분은 최근 들어 책에 흠뻑 빠지신 분들 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대체 언제였던가 싶다. 내심 반가웠다.


"저는 사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자기계발서의 맛을 알아버렸습니다. 큰일 났어요."


독서모임 가면 자기계발서 싫어하는 분을 꼭 한 명씩 만나게 되던데, 이 날도 어김없이 그런 날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뭐 때문에 자기계발서에 푹 빠지게 된 건지는 정확하게 들은 기억이 안 난다만, 일종의 편견이 한꺼풀 벗겨진 느낌이 나길래 괜히 내 마음이 푸근해지는 듯했다.


두 분 다 당장에 글을 쓰고 있진 않지만 글쓰기에 대한 관심도 꽤나 있는 것 같았다. 한 분은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글도 좀 써 보려고 시도는 하고 있다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른 한 분은, 그러니까 나의 사촌동생과 이름이 똑같은 분은 혼자 매일 뭔가를 끄적거리고는 있다고 했다.


"어디 블로그나 그런데 글 올리는 곳은 없어요?"


"네, 아직은.. 근데 제가 쓴 글 보면 뭔가 마음에 들지가 않아요."


"그럴수록 계속 써 봐야죠. 제가 해보니까 글은 혼자 쓰다 보면 알아서 늘게 되더라구요."


수긍하는 듯했지만, 나의 답변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긴 나라도 그럴 것 같았다. 대개 뭔가 풀리지 않아서 해답들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요긴한 건 자신의 문제를 한 방에 풀어줄 법한 그런 '마법의 묘약'같은 거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에 그딴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읽고 쓰는 맛에 흠뻑 빠진 사람들을 몇 번 마주하다 보니, 그들과 나의 차이점에 대하여 가볍게 한 번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본 글에서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난 꽤 오랫동안 모임도 나가지 않고 혼자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썼다는 점이다.


책에 처음 빠져들었을 땐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같은 것도 찾지 않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그땐 워낙 무지한 상태여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소설인지 자기계발서인지도 분간하지 못할 때였다. 그러니 무식하게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 것 말곤 다른 생각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책을 고르는 기준은 오직 책 제목에만 있었다. 그냥 마음 가는 제목의 책들을 한 번에 8,9권씩 집어서 침대 옆에 쌓아놓고 주야장천 읽기만 했다. 더군다나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자기계발서가 좋다더라', '인문학책을 읽어야 한다더라', '고전은 필수다' 따위의 말을 들을 기회도 없었다. 덕분에 읽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가 있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난 글쓰기를 아주 우연찮은 계기로 시작했다. 새벽기상을 작심삼일로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블로그에 기록하고자 한 것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글쓰기가 재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뭔가를 써내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언제까지 쓸 수 있나 한 번 볼까'라는 마음으로 계속 썼더니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을 넘어가더만 지금까지도 이렇게 꾸준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인생 참 살고 볼 일이다. 진짜 별 일이 다 있다.


만약 내가 글쓰기를 잘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글쓰기책을 읽거나 글쓰기 강의를 듣고 다니면서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을 들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꾸준하게 글 쓰는 습관을 들이진 못했을 것이다. 글쓰기의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나보다 잘난 사람들의 글을 염탐했었다면, 갖은 시기와 질투를 하느라 온 정신과 마음이 엉뚱한 곳을 향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말 상황에 따라서는 모르는 게 최고의 약이 맞았다. 




독서든 글쓰기든 간에 어느 수준까지는 눈 감고 귀 닫고 혼자서 묵묵하게 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상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한 유의미한 성장은 나 자신과 단 둘이 있을 때 비로소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뭔가를 얻을 순 있지만 그게 과연 상대방으로부터 뭔가를 얻은 것인지, 상대방을 통해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드러난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에 지나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오히려 더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