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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9. 2024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오히려 더 좋아

산책하다 우연히 와닿게 된 일상의 소중함


현장에서 거친 일을 하다가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 일하는 사무직 직장인이 되어 보니까 확실히 햇빛 쬘 일이 많이 없다. 그래서 아침 10시 30분과 오후 3시 정각에 알람이 울리면 밖에 나가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다. 다 돌면 대략 10분~15분 정도 걸리는 듯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광합성과 약간의 쉼을 즐기려 오후 3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밖을 나가 걸었다. 최근 들어 내내 흐리고 비도 많이 오더니 이젠 날이 많이 풀려 따듯하게 느껴졌다. 왠지 더 이상 추워지진 않을 거 같은 예감에 겨울 내내 입던 파카를 세탁소에 맡긴 건 잘한 일이었다(아내가 진작부터 맡기라고 수도 없이 말하긴 했지만).


"와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앆~~~!!!!!"


난데없이 등 뒤쪽 높은 곳 어딘가에서 정체 모를 한 남자의 괴성이 들려왔다. 바로 옆 아파트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 창문 열고 소리를 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놀래기는커녕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 가며 사색에 빠지는 내가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 안 풀리는 일 있나?'


정확한 사연은 모르겠지만, 뭔가 괴성의 울림에서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든 생각은 '난 최근에 저렇게 소리를 질러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가?'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근래 들어서 저렇게 바깥에다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한 상황을 맞이한 적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온 것 같았다. 물론 아까 그 사람이 무슨 이유로 소리를 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그렇다.


원래도 그랬지만, 덕분에 또 한 번 요즘의 일상이 더없이 감사하게 여겨졌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잠들고, 새벽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회사에서 큰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하며, 퇴근 후 아내와 함께 보내는 순간들 모두가 말이다.


누가 보면 딱히 대단할 게 없고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정말 유별난 거 하나 없고, 오히려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런 일상을 난 매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뻔하디 뻔한 나날들이 흡족스럽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고 뻔해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주제넘는 걸 탐하거나 바라지 않고, 매일 묵묵히 내 할 일이나 하는 게 참 좋다. 평소 얻는 충만함, 행복감, 안정감에 비해 치르는 대가가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별 거 없는 인생은 오히려 축복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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