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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7. 2024

집중력이 부족해서 다행이다

집중력 좋은 팀장님 덕분에 깨달은 것


회사에 있는 내 책상 바로 뒤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다. 그 창문 밖으로는 작은 산이 있다. 고개만 돌리면 그 진귀한 녹색풍경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거의 창밖을 보지 못했다. 외근으로 사무실을 자주 비우던 팀장님이 바깥일이 대부분 정리가 된 관계로 이전만큼 자리를 비우지 않기 때문이다. 팀장님이 없을 땐 한 손에 커피 한 잔 들고 조용히 작은 산을 쳐다보며 힐링하곤 했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다.


난 엄연한 팀장님의 부하직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외주직원 같은 느낌으로 일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같다고나 할까. 팀장님이 내리는 업무지시에 맞춰 일을 하지만,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우리 회사에서 나만 다룰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팀장님은 딱히 눈치를 주는 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는진 모르겠지만, 아내의 회사얘기만 들어봐도 난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하는 것 같다. 거의 유일한 상사라고 볼 수 있는 팀장님은 내게 별다른 관여를 하지 않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일하든, 혼자 산책을 하다 오든, 일하다 말고 글을 쓰든 말이다(속으론 무슨 생각을 할진 몰라도).


가끔 대답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는다. 남이 보면 무례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팀장님은 질문인지 혼잣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웅얼거림이 잦은 편이기에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가 다 같은 반응이다.


그런 특유의 매력(?)을 겸비한 팀장님이지만, 그분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창문 밖의 산을 감상할 여유 따윈 생기지 않는다. 여유는커녕 가끔은 숨도 막힐 만큼 답답할 때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팀장님은 쉬지도 않고 일만 하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서 기억력과 집중력이 가장 좋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건 충분한 장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과연 저게 장점이 맞을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좀 과하게 좋은 편이다. 그런 분이 옆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니까 나까지 덩달아 집중하게 되는 마법이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역시 그만큼 피곤하다. 상사가 바로 옆에서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일하니까(책상이 옆에 바로 붙어 있다), 그 옆에서 블라인드 올리고 방충망 열고 태연하게 바깥풍경을 바라보고픈 마음이 쉽게 들 리가 없다.


팀장님 텐션에 휘말리면 아무리 건강한 나라도 무슨 병에 걸려도 걸릴 것만 같은 께름칙한 기분이 든다. 그만큼 너무 오래도록 앉아만 있는다. 그래서 나름의 조치로 요즘은 알람을 맞춰놓고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일부러라도 산책을 다녀온다.


확실히 창문 너머로 조용히 바라보는 것보단, 산책하면서 직접 흙길을 밟는 게 훨씬 좋다. 산 밑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옮기다 보면, 한창 맨발 걷기에 빠진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한다. 더불어 자연의 초록빛깔 사이에서 평안을 얻는 건,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자주 하는 편이다.


여하튼 난 예전부터 집중력이 좋지 않은 게 나름의 고충이었다. 하지만 집중력 상위 0.1%인 사람 옆에 붙어서 일해보니까, 차라리 집중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사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다 중간에 창밖으로 산도 쳐다보고, 가끔은 흙길도 지그시 밟으며 유유히 근처 동네도 거닐 줄 아는 그런 마음의 여유 말이다.


회사 입장에선 팀장님처럼 일해주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을진 모르겠으나, 옆에서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에 다음의 네 글자가 떠오를 뿐이다.


'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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