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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2. 2024

오래달리기 2등을 하면서 깨달은 것

생각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논산훈련소에 입대하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는 아침마다 1.5km를 뛰는 것이었다. 자대배치를 받기 전까지의 한 달 동안 계속 그랬다. 입대하기 전에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기에 기초체력이 없어서 더 힘든 것도 있었다. 뛸 때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주변에 함께 뛰는 동기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길래 나도 덩달아 뛸 수 있었다.


그 후엔 제주도로 자대배치를 받았는데, 그곳엔 '전투력 측정'이라는 게 있었다. 일종의 체력검정이기도 하고, 대회이기도 하면서 행사이기도 했다. 제주도와 서귀포에 있는 모든 초소에서 체력 좋은 사람들을 모아 오래 달리기도 하고 뭐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내가 왜 체력 좋은 사람 중 한 명으로 뽑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 보니 오래달리기 연습을 체력 건실한 부대원들 사이에서 하고 있었다.


달릴 때마다 달리기 싫었다. 이걸 왜 해야 하나 싶으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뛸 때마다 멈추고 싶었지만 옆에 같이 뛰는 사람들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나마 훈련병 시절에 아침마다 뛰었던 게 도움이 많이 됐던 모양인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음에도 몸이 잘 버텨주었다. 그럼에도 생각의 힘이 더 강력한지 항상 종점까지 뛰진 못했다. 총 거리가 10이라면 항상 6,7 정도에서 멈췄다가 다시 마지못해 마저 달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뛰기 시작하자마자 5분도 안 돼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계속 뛰다가 아니나 다를까 6,7 정도 지점에 다다랐을 때 멈출 기미가 보였다. 그런데 순간,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진짜 힘들어?'

힘들긴 했다.


'숨도 못 쉴 정도야?'

숨이 확실히 차긴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약간 여유도 있는 것 같았다.


'다리가 아픈 거야 그럼?'

다리의 감각들을 자세히 느껴보니 정작 다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왜 멈추려는 거야?'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느껴보니 당장에 멈춰야 할 정도로 숨이 들어차지도, 다리가 아픈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리는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렇게 멈출 핑계를 구하지 못한 덕에 이전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뛸 수 있었다.


그때 난 아주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난 여태껏 진짜 힘들어서 포기한 게 아니라, 힘들다는 생각이 날 포기하게 만들었구나'라는 것을 말이다.




이후로 연습 도중에 멈춘 적은 없었다. 달릴 때마다 이전처럼 '힘들다', '그만하고 싶다', '멈추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몸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숨이 얼마나 들어차는지, 다리는 얼마나 아픈지와 같은 것들을 말이다. 최대한 생각에 여지를 주지 않았다. 생각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끔 만들었다. 그랬더니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마다 매번 중간에 멈추고 포기하려고만 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연습할 때마다 2등 안팎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체력 좋다고 소문난 부대원들 사이에서 말이다. 실제 전투력을 측정하던 당일에도 선두에서 달렸다(순위를 가리는 그런 대회는 아니었다).


그때의 깨달음은 평생 잊질 못한다. 그래서 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진짜 힘들어서 힘든 건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다. 정말로 힘들어서 힘든 걸 수도 있겠지만, 혹시나 또 이전처럼 생각이 술수를 벌이는 거라면 그 농간에 놀아나고 싶진 않으니까.


생각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생각은 생각이 없다. 생각은 좋고 나쁜 게 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얼마나 한 사람을 들고 볶고 옭아맬 수 있는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때문에 어떤 시련을 겪고 있거나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유심히 관찰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한다면, 사리분별 못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생각부터 바로 잡아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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