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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3. 2024

상대방의 흠을 잡고 싶을 때 드는 생각

눈에 거슬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대방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항상 사람을 대할 때, 특히 누군가의 호박씨를 까고 싶을 때 마음을 추스르고자 속으로 되뇌는 말이다. 처음엔 그냥저냥 흘려듣는 격언 정도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마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목격하는 모습은 나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 게임만 하던 어린 시절엔 자기 주관이 또렷한 친구들이 그렇게도 눈에 거슬렸다. 머리로는 내내 학교 마치면 집 가서 레벨업 하고 싶은 생각만 하다가도, 왠지 모르게 당당하고 떳떳해 보이는 애를 마주하면 괜히 질투가 나면서 부러워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친구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실상은 말도 제대로 섞지 못했다. 기에 눌려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마음처럼 다가가기 힘들었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존재 같기도 했다. 아마 난 그런 독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어느 정도 '내 생각'이라는 걸 머릿속에 달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주변인들도 날더러 주관이 또렷한 사람이라고 하니 아주 착각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이젠 소위 '어영부영'한 사람들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들면서 눈에 거슬린다. 우유부단하고, 책임감 없고, 시원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조치나 대비도 없이 오늘만 살아가는 그런 이들 말이다.


처음엔 그들의 모습들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들은 어리석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품어서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새로이 든 생각은 '내 안에 그들의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결론에 닿게 되었다. 마음에 우연히 피어난 그 생각만큼은 어떡해서든 부정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과하게 거부하고 싶단 것 자체가 일종의 증명이 되는 셈이다.


물건 다 쓰고 쓰레기통에 제대로 안 버리는 사람, 청소 제대로 안 하는 사람, 일 똑바로 못하는 사람 등을 보면 나무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알고 보면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내가 나를 그런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나도 원래는 쓰레기 안 버리고, 청소 안 하고, 일 야물딱지게 못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충분히 그런 면이 남아 있다.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들이라면 애초에 눈과 마음에 맺힐 일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뭔가 따지고 싶고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를 거울삼아 나를 관찰하고자 한다. 물론 순간의 반응을 견딤과 동시에 사유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이 상대방에게 말리지 않고 되려 그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거울이라면,

침묵은 그 거울을 비추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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