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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6. 2024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친구를 마주하다

너무 늦지 않게 그가 그를 되찾기를


"요즘 생각이 많다."


"뭐 때문에?"


"지금 하던 일 때려치우고 딴 거나 할까 싶어서."


"왜?"


"세상이 미쳐 돌아가. 나보다 일도 적게 하는 놈들이 돈은 더 많이 받아가."


우연히 전화하게 된 친구와의 통화내용이다. 그 친구는 원래 긍정적인 편이었다. 직업 특성상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과 많이 만나 봐서 그런지 생각도 꽤 열려 있는 편이었고, 상대방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줄 아는 친구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남들'이었다.


마음의 시선이 온통 다른 곳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하는 말마다 '남들에 비해서 너무 늦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일하는데 나만 고생한다'와 같은 푸념을 일삼았다. 그가 내뱉는 모든 한풀이에서 요주의 인물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에게 가장 외면받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본인 자신인 것 같았다.


"힘든 건 알겠는데, 그렇게 남들이랑 비교만 할 거면 어디 가도 못 버텨. 설사 네가 다른 데 가서 성공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쪽 세계에서도 너보다 훨씬 더 성공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게 눈에 밟혀서 옳게 살 수나 있겠냐."


"그런데 유독 여기가 좀 심해.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죄다 나한테 떠 넘겨."


"너한테 일을 떠넘기는 사람은 다를까? 그 사람도 본인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부하직원인 너한테 미루는 거겠지.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그런 건 어느  조직을 가도 다 똑같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진작에 뭐라도 좀 할걸. 이런 생각을 너무 늦게 한 거 같네."


"늦었다는 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야?"


"보편적으로 우리 나이 정도 되면 남들은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잖아."


"보편적이라는 게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늦었다'라는 건 남들과 비교할 때만 성립되는 개념이야. 네 인생 딱 하나만 놓고 보면 늦을 수도 없고 빠를 수도 없어. 네가 뭘 깨닫든지 간에 네 인생에선 가장 적당한 때에 찾아온 거야."


되도록이면 친구의 말을 얌전히 들어주고 싶었는데, 답답했다. 그는 마치 눈 뜬 장님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부분을 언급할 때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비겁하게 일하는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어떤 걸 갖추고 있는지만 언급할 뿐이었다. 스스로에겐 관심도 없을뿐더러, 다른 사람들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꽤나 맑았던 그의 세계관에 언제부터 그토록 진한 그늘이 드리웠을까.




나와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일하면서 더 많은 돈을 받아가는 게 부러울 순 있다. 질투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나와 뭔 상관이 있을까. 남들이 오백만 원을 받아 가든 천만 원을 받아가든, 그게 대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현실세계에서 우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각자만의 세상을 별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천만 원과 너의 천만 원이 갖는 가치는 생각 이상으로 다르다. 정 남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들의 수입이 탐난다면, 그런 마음을 동기 삼아 본인의 역량을 키우면 될 일이다.


시기나 질투 같은 감정도 써먹기 나름이다. 그런 마음을 품는 것 자체는 전혀 나쁜 게 아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마음을 잡아먹히지 않고 오히려 역이용한다는 생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어 있는 꽤 많은 지표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와 같은 것들을 말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스승은,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기분 좋은 감정들은 그냥 기분이 좋고 말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직시한다면 스스로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요컨대 부정적인 감정은 일종의 기회인 셈이다. 근데 그렇지가 않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남을 까내리기만 해서는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다. 되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만 좁아질 뿐이다. 동시에 자신과 점점 멀어질 것이고, 자존감이 추락하는 건 덤이다.


기억하기로 그는 원래 그렇게 말 끝마다 남들을 언급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을 염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비교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 지금의 그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그만의 문제이니 스스로의 생각으로 깨닫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난 단지 멀리서 건투를 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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