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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7. 2024

당신은 Giver인가요, Taker인가요?

Taker보단 Giver가 읽었으면 하는 글


어느 날,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누군가 "당신은 Giver와 Taker 중 어느 쪽에 가깝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거진 49:51의 비율 정도로 다양하고 팽팽했다.


"전 Taker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는 기질은 Taker인데, Giver가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먼저 주면 받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Giver기질이 강했는데, 너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Taker가 되고 싶긴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아요."

라며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때, 난 한 가지 생각에 맺혀 있었다.


'모든 인간은 철저하게 Taker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릴 적 명절마다 시골 큰 집에 가면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5남 1녀 중 넷째였고, 큰 아버지와 삼촌 모두 자녀가 있었다. 형들은 모두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말 섞기가 힘들었고, 주로 한 살 차이 나는 사촌동생과 소밥 주며 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난다. 나와 피가 섞인 친척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뭔가 든든했다. 세뱃돈도 많이 받아서 좋았다.


그런데 그 시절이 그토록 짧을 줄은 몰랐다. 예전엔 어른이 되어서도 명절이 다가오면 계속 그렇게 모일 줄 알았지만, 이젠 큰 집을 방문하는 식구는 우리 가족밖에 없다. 아버지 형제들은 피만 섞였을 뿐, 이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모든 걸 다 언급할 순 없고 대부분 돈이 문제였다. 세상 물정 모르던 난 큰집에 발길을 끊은 모든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할머니를 비롯한 큰집 사람들은 매번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우리 가족을 가장 좋아했고, 특히 우리 엄마를 많이 아꼈다. 가족에겐 다정하지만 바깥에선 과묵하고 자존심 강한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주변 사람 모두를 웃게 만드는 독보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난 그런 엄마가 좋았다. 그렇게 밝고 친절한 사람이 우리 엄마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영원히 가진 못했다.


처음엔 엄마가 명절이면 명절, 생일이면 생일, 때에 맞춰서 어른들에게 용돈 드리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용돈은커녕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이기적으로 사는 것 같은 아버지 형제 가족들이 매정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화목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희망이 얕은 가족력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돈 공부를 시작했더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우리 부모님은 착한 게 맞았다. 하지만 바보였다. 노후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한 푼이라도 더 모을 생각은 하지 않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어른들 용돈 챙기느라 탕진하는 건 차마 납득하기 힘들었다. 다른 가족들에게 인정과 애정은 듬뿍 받을진 모르겠으나, 그 밑에서 남들 다 가는 학원 한 번 제대로 다녀보지 못하며 자랐던 나와 동생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버지 형제들은 역시 나쁜 게 맞았다. 그들은 얻을 게 없으면 부모님도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가족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실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명절 때 찾아오지 않는다며 마음속으로 욕했던 그들처럼 살아야 된다고까지 여길 정도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손가락질은 받을지언정 가족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가가 없는 우리 부모님에 비해 다른 아버지 형제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걸 보면 느끼는 게 많다.




우리 부모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그리 돈을 퍼주지 못해서 안달인가 생각해 봤더니,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게 되었다.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찰나의 순간을 모면하지 못해 돈으로 때웠던 거구나'


부모님은 마음씨 좋은 Giver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가족들을 먹여 살릴 돈도 안일하게 써버리는 철저한 Taker였던 것이다. 할머니 용돈, 각종 제사비, 생일기념 용돈 등을 쓰지 않고 모았으면 집 한 채를 사진 못했어도 최소한 전세자금은 마련했을 터였다. 그러나 아버지 그리고 엄마는 자신들의 안위를 여미기 위해 통장에 구멍을 내는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그 여파는 지금도 여전하다.


은행이 어떻게 돈을 벌어들이는지, 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돈을 쓰는지를 알면 알수록 괴로웠다. 가난에서 극복하기는커녕 헤어날 생각도 상상도 하지 못하는 부모님을 곁에서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아버지와 엄마를 사랑했지만 그분들의 기운에 말리면, 훗날 내가 이루게 될 가정도 적잖이 타격을 받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고향을 뜨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 그렇게 고향을 뜬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희한하게도 지역을 옮기면서부터는 모든 일이 다 잘 풀렸다. 집에서 가까우면서도 안정적인 직장도 구하고, 훌륭한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돈도 잘 모이고 있다. 여전히 부모님은 밑 빠진 독에 돈을 붓고 계시지만 말이다. 그만큼 더 돈을 헤픈 곳에 쓰지 않으려 한다. 젊을 때 그리고 모을 수 있을 때 차곡차곡 잘 모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한편으론 버겁기도 하지만, 일종의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그럭저럭 버틸만하다.




이러한 나의 가정환경의 영향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봐도 '인간은 뼛속부터 철저한 Taker다'라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생각한다. 사람은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행동한다. 사람은 이유가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인간은 이유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끔 술을 먹든 밥을 먹든 무조건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우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를 요즘 세상에선 좋게 말하면 '착한 사람', '나쁘게 말하면 '호구'라고 부른다. 아마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인도 그렇고 주변인들도 그렇고 완전한 Giver라고 여길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들이 본인 카드로 계산하겠다며 고집부리는 심리는, 우리 엄마가 돈도 없는데 어른들한테 용돈을 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들은 '안정감'이라고 예상되는 그 무언가의 감정을 얻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스치고 말 불편한 감정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말이다.


앞서 성공한 부자들은 부자가 되고픈 사람들에게 '돈을 벌고 싶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훌륭한 가치를 먼저 제공하라'라고 한다. 정말 그들의 말처럼 현시점에서 가장 최적화된 가치를 일단 무료로 먼저 제공하는 자가 시간이 지나면 실제 큰 부를 거머쥐기도 한다. 그런 자들은 Giver가 아니라, Give를 이용할 줄 아는 똑똑한 Taker인 것이다. 하물며 성공인들이 사회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도 온전히 주고자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만큼 돌려받을 게 많은 걸 알기 때문에 기꺼이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인 보상이든, 물질적인 보상이든 간에 말이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 모든 인간은 Taker다.
진정한 Giver는 존재하지 않으며,
Take를 위한 Give만이 있을 뿐이다.

Give는 Taker가 활용하는 수단이다.
Take를 위해 잠시 Giver가 될 순 있으나,
영원한 Giver는 없다.

인간의 시작과 끝은 오직 Taker다.


성공하고 싶다면 Give의 본질과 목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Taker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본인 스스로를 Giver라고 여긴다면, 평소 자신의 행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부분을 깊게 사유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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