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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10. 2024

우리 아들은 나보다 잘 살았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2024년 7월 9일 새벽 4시

평소처럼 글을 쓰려고 일찍 일어났다. 한두 시간 글을 쓰고 지하 헬스장에 운동하러 갈 예정이다. 이후로는 원래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데 오늘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다. 아내와 함께 산부인과로 간다. 임신한 지 41주가 넘었는데도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유도분만을 시도하기 위해서다(날짜는 미리 잡은 날이다). 그동안 뱃속의 아기가 너무 별 탈 없이 자라서 사실 자연분만 할 줄 알았다. 역시 인생은 생각처럼 흘러가는 법이 잘 없다. 이전엔 유산이라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일도 겪었던 걸 보면 더 그렇다.


난 원래부터 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곧 아빠가 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들이 지나가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곧 있으면 아빠가 된다는 게 전혀 실감이 안 난다. 이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다.


아내 배가 불러오는 동안 아이에 대한 글을 많이 쓸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별로 쓰지 않았다. 물론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 출간 계약을 하는 바람에 바쁜 것도 있긴 했다. 근데 왠지 그것도 핑계인 것만 같다. 브런치엔 다른 글도 많이 썼으니.


만약 오늘도 유도분만 하는 날이 아니었으면 다른 글을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좀 있으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자판에 지문을 남기고 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쓰고 싶은 말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키보드를 두드린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쓴 적이 있나 싶다.


설레진 않는다. 기분이 좋지도 않다.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평소 상태와 전혀 다를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듯하다. 만약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난 내가 지극히 멀쩡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이 길어질수록 현재 상태가 인식하는 것과는 달리 많이 정상(?)은 아니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듯하다.


난 꽤 오래전부터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한 여자의 다정한 남편이 되고 싶었고,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일단 결혼은 했고 이때까지 아내에게 들은 말들을 종합해 보면 어느 정도 다정한 남편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같다. 남은 건 좋은 아빠가 되는 일인데 유독 그게 자신 없다. 결혼하는 것과 다정한 남편이 되는 건 어차피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여길 만큼이나 자신이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확실히 다르다.


우리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떠올려 봐도 그렇다. 아버지와 난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가깝지도 않다. 그리고 난 아버지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아마 그 부분도 한몫할 거라고 본다. 고로 감히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은 날더러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난 아버지와 비슷한 구석이 많음을 느낀다. 그래서 더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난 우리 아들이 건강한 것도 좋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무엇보다도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면 더 좋겠다. 그리고 나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직 부모라는 게 대체 어떤 느낌인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나보다 잘 살았으면 좋겠단 마음만큼은 확실하게 느낀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게 많은,

그런 괜찮은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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