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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21. 2024

발라드가 나오길래 냅다 꺼버렸다

더 이상 슬픈 가사가 와닿지 않는 이유


중학생 때 처음으로 'yepp'이라는 목걸이 형태의 mp3 플레이어를 목에 달고 다녔다. 용량은 128 메가바이트여서 약 100곡 정도의 음악을 넣을 수 있었다. 그중 90곡 이상은 발라드였다. 어릴 때부터 댄스곡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한 번 들으면 질렸고 가사는 와닿지 않았으며 빠른 템포는 귀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그 취향은 30대가 넘어서도 변함이 없었다. 예전에 비하면 그나마 다양해졌다만 여전히 플레이리스트에 100곡이 있으면 6,70곡은 발라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운전하던 와중에 음악을 틀고자 유튜브뮤직 앱을 열었더니 좋아하는 발라드 가수의 신곡이 떠 있는 게 보였다. 바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들어보니 제목부터 가사까지 일상의 힘듦을 얘기하는 노래인 것 같았다.


그러다 느닷없이 손가락을 뻗어 오디오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이후 재생 버튼은 다시 누르지 않았다. 그대로 그냥 목적지까지 조용히 운전해서 갔다. 일전에 그런 적은 없었다. 음악 자체를 그만 듣고 싶어져서 재생 중인 음악을 끈 적은 있었어도, 발라드가 듣기 싫어서 확 꺼버리듯 끈 적은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없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왜 듣기 싫어졌는지를 곱씹어 봤다. 정확한 가사가 기억나진 않는데 대충 사는 게 고된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이었다. 아마 그 부분이 오글거려서 꺼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예전엔 그런 가사가 꼭 내 이야기만 같았다. 근데 이젠 더 이상 우울하고 슬픈 내용의 가사가 전처럼 와닿질 않았다. 나이가 들어버린 걸까.


사는 거, 물론 쉽진 않다. 근데 30년 넘게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대부분의 것들은 막상 부딪혀 보면 별 거 아닌 게 많았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의 비율이 적당히 맞물려 돌아가는 인생은 그럭저럭 살 만했다.


겪어보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중요한 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관건이었다. 더군다나 내게 일어난 일이 좋은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봐야지만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때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흐름'에 모든 걸 내맡길 필요도 있었다.


무슨 일이 닥쳐올지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방법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내겐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 그러니 삶이란,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앞으로 점차 발라드 듣는 일이 줄어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왠지 슬픈 노래를 당분간 안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고달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노래 가사만큼이나 고달픈 건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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