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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17. 2024

결국 참지 못하고 상사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중요한 건 대화 그 자체였다


업무 특성상 가끔 거래처 현장을 팀장님과 조사할 때가 있다. 조사 자체는 어려운 게 없었다. 문제는 팀장님이 현장에만 들어가면 쉬지 않고 일한다는 점이었다. 점심도 잊은 채 쉼 없이 일하고, 일이 끝나야만 철수하는 고집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처음엔 '정신 없이 일하느라 시계를 못 봤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팀장님은 나가야 할 시간에 우연히 시계를 봐도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시간은 팀장님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날 해야 할 일들의 완료 여부만이 비로소 팀장님을 멈추게 했다.


원래 난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팀장님의 업무 방식을 견디지 못한 직원이 두 명이나 퇴사하는 바람에 현장 조사를 갈 때면 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다행히 크고 복잡한 일은 끝나 예전만큼 자주 나가진 않았지만, 팀장님과 매일 나가야 했다면 나 역시 퇴사했을 것이다. 아마 앞서 나간 직원들보다 훨씬 더 빨리.


근래엔 크게 바쁠 일이 없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되려 일거리가 없어서 문제였다. 하지만 팀장님은 현장만 들어갔다 하면 일 못해서 안달 난 사람마냥 여전히 쉬지 않고, 점심 시간을 넘기곤 했다. 빨리 움직여서 오전 중에 일을 끝낼 수만 있다면 나도 좋았다. 근데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시간 맞춰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에 온통 일 생각밖에 없는 팀장님은 그런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 같았다. 퇴사 생각이 절로 났다.


"하..."

딱히 그럴 이유도 없는데, 굳이 12시를 20분이나 넘겨서야 겨우 밥을 먹으러 나온 상황이 답답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힘들어?"

"예."

알면서도 모른 척 물어보는 듯한 팀장님의 말에 짜증이 나 솔직하게 대답했다.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예전에 목수로도 일했다면서."

"그땐 적어도 쉬어가며 일했어요."

"아이 진짜 참! 아휴.."

팀장님도 짜증이 터진 듯했다.




이후 분위기는 급속도로 얼어 붙었다. 난 입맛이 없어서 밥을 먹다 말았고, 팀장님은 그 좋아하던 뉴스를 보지도 않고 정면을 응시하며 밥을 먹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그동안의 불만을 다 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팀장님도 같은 맘이었는지 쉬는 시간에 팀장님이 먼저 운을 뗐다.


"난 너한테 정말 서운하다. 네가 아빠 되고 나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배려를 해줬냐. 그리고 현장에서 안 쉬고 일하는 게 불만인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오전 중에 빨리 끝내고 나가려고 그랬던 거 너도 알잖아."

"팀장님이 배려해주신 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건 예전부터 쌓인 불만이었어요. 오늘 한 번 그랬다고 제가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동안 시간을 지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잖아요."

"오전 중에 끝내려다 보니 그런 거잖아."

"오전 중에 일찍 끝낼 수만 있다면 저도 좋죠. 막말로 안 쉬어도 상관없고 한 시간을 더 해도 괜찮아요. 근데 일이 늦어져서 못 끝낼 것 같으면 그땐 시간 보고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니까."

그놈의 일정 핑계는 수없이 들었다. 일정이 바빠서가 아니라 팀장님의 마음이 급해서, 또 특유의 고집 때문에 무리한다는 건 이젠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진전이 없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팀장님은 뜻을 굽힐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뜻밖의 수확은 있었다. 속에 담아 둔 말을 시원하게 뱉고 나니 희한하게도 억눌린 감정이 마치 체증이 내려간 듯 사라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면 팀장님의 억지 페이스를 계속 따라야 했지만, 차라리 내 마음을 고쳐 먹는 게 더 나을 듯했다. 게다가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예전처럼 덜컥 퇴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어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는지 팀장님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나도 내가 한 번 집중하면 다른 건 안중에도 없는 게 단점인 줄은 알아. 근데 나이 먹어서 그런지 그게 잘 안 고쳐지네."

"네. 팀장님도 고생하시는데 저도 더 이상 불만 삼지 않을게요."

"그래. 힘들면 그때그때 솔직하게 얘기해줘. 나도 사람이라 말 안하면 몰라."

"힘들면 힘들다고 말씀드릴게요. 오늘 제가 했던 말은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난 상대방에게 쌓인 게 있으면 대화를 통해 적절한 조율점을 찾아야 풀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 팀장님과 얘기하면서 깨달았다. 마음의 응어리는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또한 불만은 남이 풀어주는 게 아니라, 마음가짐을 달리 함으로써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고.


문제의 답을 대화를 통해 얻고자 했던 건 욕심이었다. 대화의 본질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마주하는 데 있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대화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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