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잊는다는 것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시셨다.
자꾸 깜빡깜빡하시더니 가장 사소하였던, 그리고 심리적 거리가 멀었던 사람부터 점점 잊어가셨다.
나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시고 '총각은 누구여?'라고 묻기 시작하실 무렵에는 이미 많은 것을 잊으셨고 기력도 쇠하셨다.
고질적으로 무릎이 안 좋아 보행기 없이는 화장실도 못 가셨던 터라, 어느 순간부터는 볼일도 그 자리에서 보셨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또, 본인이 실수를 했는지도 잊어버리신 것이다. 그럴수록 자식들의 눈물은 많아져갔다.
치매가 무서운 까닭은 점점 모든 일상생활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행위까지도 잊는다고 한다.
삼키는 법도 잊어서 음식을 넘기지 못하니 점점 쇠약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외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엄마와 이모들은 어떻게 요양원에 보내냐며 방문요양사를 알아보고, 돌아가며 집에서 모시기도 하였지만 일을 하면서 치매에 걸린 노인을 모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 뒤로 엄마는 가능할 때마다 할머니를 보러 가고 싶어 했다.
운전을 하지 못하여 아빠와 나에게 부탁하고, 이모들에게도 부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주까지 왕복한다는 건 가벼운 일은 아니었기에 거절당하는 횟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져갔다.
운전을 못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는 엄마는 아마 찾아가고 싶은 마음만큼 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세 가족이 모여 할머니 면회를 갔다.
면회시간에 맞춰 도착한 요양원. 유리문 너머로 휠체어에 앉아계시는 외할머니가 보였다.
우리를 알아보셨던 것일까? 우리를 본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면회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모들은 할머니 곁으로 달려갔다.
"엄마 잘 지내고 있었어?"
"응"
"엄마 밥 잘 먹고 지내지?"
"응"
에너지 없는 작은 목소리
치매로 자꾸 잊는 할머니에게 엄마와 이모들은 우리는 잊으며 안된다는 듯 자꾸 물었다.
"엄마 나 누구야"
"막내"
"엄마 난?"
"순례"
"그럼 엄마 난 누구여?"
"누구여?"
"엄마 진짜 나 몰라? 섭섭하네 다 기억하면서 왜 나만 몰라"
엄마와 막내이모는 알아보았지만 둘째 이모는 모르겠다는 외할머니. 그 뒤로도 이모는 수차례 되물었지만 끝내 이름을 듣지 못하였다.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이모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지며 치매는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 잊는구나. 가족까지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계속 속상해하던 이모의 얼굴이 떠올라 씁쓸함이 계속 올라왔다.
가족을 잊는다는 것 그리고 잊혀진다는 것
그 슬픔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 않아 더 슬프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