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c Kim Jul 14. 2023

가족)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드리지 못한 30만원

가장으로 산다는 건


7:24분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분명 방에 있을 엄마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였다. 의아하다는 생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서 준비해서 내려와 할아버지 돌아가셨대.."


잠이 확 달아났다.

새벽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급하게 전화를 받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먼저 전주에 내려간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건강하신 편이었고, 가장 최근에 뵈었을 때도 무척 정정하셨기에 잠이 달아날 만큼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살다 보면 우리는 하기 싫은 새로운 경험도 해야만 하는 날이 찾아오는 거 같다.

상상도 하기 싫은 경험, 오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경험들 까지도 말이다.

오늘이 아마 아빠에게는 그런 날이지 않을까.


동생을 급하게 깨워 내려간 전주의 한 장례식장.

토요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아빠.

친구로 보이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침에 너무 정신없이 내려왔는지 졸음이 몰려왔다.

저녁에 사람이 몰릴 테니 조금 눈이라도 붙이라는 말에 뒷방에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을 조금 붙이고 방을 나오는데 문 옆에 앉아서 아빠가 울고 계신다.

역시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옆에 앉았다.

내가 옆에 있는다고 할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그래야 할 거 같았다.


한참을 우시던 아빠가 자신은 지금 너무 속상하다며 입을 여셨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 나에게 계속 말씀을 이어가신다.


"아들아, 아빠가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 병원에 갔었는데 주머니에 50만 원이 있었어. 근데 그 50만 원이 뭐라고.. 그게 뭐가 아까워서 다 드리지 못하고 20만 원만 드렸을까.. 그걸 다 못 드린 게 지금 너무 속상하다.."


이별을 하였을 때, 그 사람과의 마지막 기억이 그렇게 오래 남는다고 한다.

아빠에게는 20만 원을 받으시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웃으시던 얼굴이 너무 해맑았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렇게 아빠는 한참을 우시며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인생은 참 야속한 거 같다.

아빠도 30만 원이 아까워서 드리지 않은 건 아니지 않았을까.

할아버지의 아들이면서 또 한 가족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차마 다 드리지 못했을 30만 원

다만 그 선택이, 가장으로서의 무게만큼 아빠에게 너무 아프게 남아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가족) 치매에 걸린 외할머니는 자식마저 잊으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