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유학이라는 막연한 단어. 내 인생에는 전혀 관련 없는 단어일 줄 알았다.
그리고 정신 차려 보니 벌써 유학을 시작한 지 2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처음 무모하게 시작했던 유학 생활을 기록하고 싶어서, 또 유학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써보겠다 마음먹었다. 사실, 단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은 나에게 작가라는 타이틀이 나에게는 너무 거창하여, 며칠간 글을 서두를 썼다 지웠다만 반복하였다. 그래도 용기 내어 나의 유학 생활을 기록해 보자 마음먹게 되었다.
유학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왜 이 나라를 선택하게 되셨어요?
모든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을 들으면서도, 이 질문을 다른 유학생들에게 건네면서도 거창하고 특별한 이유 듣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학생들에게 처음 말을 건네기에 가장 무난하고 쉬운 질문이어서 새로 보는 유학생들과는 한 번쯤 하게 되는 대화의 주제이다.
내가 유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과 별 다르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고 거창한 이유도 아닌 한국에서의 진로가 불투명해서이다. 열아홉, 수능 이후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였고 재수를 준비할까 하던 차에 우연히 친구와 다녀온 유학박람회에서 유학을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차근차근 준비하여 유학을 오게 되었다. 누군가 들으면 그게 도피성 유학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 이유겠지만,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는 유럽에서 여행을 다니며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모든 것들이 나를 매혹시켰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는 장난 삼아 늘 물 흐르듯이 살다 보니 유학생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여전히 그때 당시의 생각과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유학을 결정할 때의 나는 너무도 유학의 밝은 면과 유학에 대한 환상에 갇혀 있었다.
주위에는 단 한 명도 유학을 해 본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조언을 구할 사람도 혹은 해외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같이 유학을 하고 있는 5년, 7년, 혹은 10년 이상의 유학생들이 이 글을 본다면 아직 2년 조금밖에 안된 사람이 유학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이 유학생활을 조금밖에 겪어보지도 않고 이야기한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온 인생을 한국에서 살다온 나에게 지난 2년은,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의 변화였다.
2017년 1월 3일, 내 인생에서 모든 것이 처음인 하루였다.
1월 3일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1월 3일 새벽 5시에 공항에 도착했다. 그동안 해외여행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다녀온 싱가포르 한 번, 초등학교 시절에 할머니 손을 잡고 큰아버지를 뵈러 다녀온 미국 한번, 이렇게 단 두 번 밖에 없던 나는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유학을 시작한다는 사실이 다가오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 나와준 친구들이 내가 떠날 때 엉엉 울 때도, 부모님과 인사를 할 때도, 나는 덤덤했다. 아마 내가 유학을 간다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 비행기 옆자리에는 한 여성분이 앉았는데, 기나긴 비행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내리기 직전 그분이 내게 말을 거셨다.
"어디로 가는 길이에요?"
나는 그분께 내가 유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고, 그분은 자신이 호주에서 대학시절을 보냈다고 말해주셨다. 호주에서 유학하던 당시, 떡볶이가 너무 그리운데 떡이 없어서 직접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자신의 유학 생활을 이야기해 주셨다. 내리기 직전이라 정신도 없고 또 몇 년이 지난 순간이라 모든 이야기들이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떡볶이를 매우 좋아하는 나라 '정말 이 나라에도 떡이 없으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던 기억과 그분이 마지막까지 내 유학의 시작을 응원해 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많이 힘들겠지만 잘할 거고 다 괜찮을 거예요."
그분은 환승을 하러 떠나셨고, 나는 입국 심사를 받으러 다른 방향으로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해주셨던 말은 그 순간에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응원을 받았다는 사실에 유학의 기분 좋은 시작이다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지나쳤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유학생활의 힘든 순간들에 대한 경고가 아녔을까.
사실 입국심사에 대한 걱정도 생각도 전혀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입국심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다행히도 새벽이어서 그랬는지 나에게 어떠한 서류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내가 공부하러 왔다고 말하니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심지어 왕복 티켓도 아녔는데도 별다른 확인 절차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처음 입국심사를 할 때는 서류를 생각보다 꼼꼼히 준비를 해야 했다. 운 좋게도 별다른 문제없이 입국을 한 나는 새벽 5시 공항에 온전히 혼자가 되자 내가 유학을 온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한 달간 머물 집 열쇠도 찾으러 가야 했는데, 오피스 문이 8시쯤 연다고 해서 일단은 무작정 공항 안에 있는 버거킹에서 밥을 먹겠다고 결심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내가 가져온 모든 짐을 옮기려면 일단 먹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눈에 보이는 곳에 가서 주문을 했다. 새벽 5시 공항에서 문을 연 곳은 버거킹 밖에 없었고, 혼자 외국에서 주문을 하는 나 스스로가 새롭고 기특해서 특별할 것도 없는 버거 사진도 남겼다.
혼자 버거킹을 먹으면서 새벽이라 붐비지 않는 공항을 두리번거렸다. 익숙한 버거킹 간판, 스타벅스 간판,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언어들 전혀 모르는 말로 대화하는 외국인들.
버거를 다 먹을 때쯤 열쇠를 어떻게 찾으러 갈지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택시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어 택시를 타는 것보다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고민을 하다 기차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작정 기차표를 파는 곳에 찾아가서 기차표를 파시는 분께 주소를 보여드리며 여기로 가는 기차가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았고 역무원은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 주셨다. 이때 나에게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역무원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낯선 타지에 첫 순간에서 마주친 분이 건넨 호의가 아직도 감사하다.
나는 40kg 가까이 되는 짐을 끌고 혼자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벽 6시에 전혀 모르는 타지에서 혼자 그 큰 짐을 끌고 모르는 길을 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열쇠를 받는 장소는 기차역에서 내려서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새로운 풍경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으며 그 새벽에 혼자 짐을 끌고 걸어갔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무모하게 다녀서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혹시라도 유학을 시작하려는 분이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꼭 유학 가시는 곳에 첫날 도착해서 숙소를 가장 안전하게 찾아가는 법을 검색해보고 가시는 것을 추천한다. 돈을 아끼려고 나처럼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열심히 걸어 열쇠를 받는 곳에 도착해 무사히 열쇠를 받고 내가 한 달간 머물 숙소로 향했다. 이 때는 도저히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처음으로 중앙역 과 도시 풍경들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사진으로만 보던 유럽이 내 눈앞에 펼쳐진 다는 것이,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정말 꿈같았다.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여러 맛집을 추천받으며 도시 생활에 대한 팁들을 받으며 도착한 숙소는 정말이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유럽식 집들, 운하, 시간마다 울리는 종소리, 걸터앉을 수 있는 창틀.
낯선 도시에서 내가 머물 곳, 내 자리가 생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