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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바다 Jan 14. 2024

경주(慶州)  구석구석 (2)

불국사 (佛國寺)

불국사 배치도

<주요 관람 코스> (아래 글 탐방 내용 : 굵은 선)

석굴암> 불국사> 분황사> 황룡사지> 월성(석빙고)>동궁과 안압지(월지)>경주 국립 박물관> 월성> 계림> 첨성대


불국사 (佛國寺)

   석굴암에서 불국사 내려오는 내내 끊임없는 ㄹ자 모양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멀미를 하며 택시로 내려왔다. 일주문 앞에 '세계유산 불국사'를 세긴 바위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얼음이 언 연못과 노송밭을 지나 올라가니, 청운교와 백운교가 보였다. 가슴이 뛰었다.

불국사 표지석
연못
노송과 청운교와 백운교

   경주 토함산(吐含山, 745.8m)에 자리 잡은 불국사는 751년(신라 경덕왕 10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하였다. 왜의 칩입으로 1593년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전해져 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불국사 일주문

   통일신라 시대의 다보탑과, 석가탑(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교·칠보교가 국보로 지정되었다. 1995년 12월에 불국사, 석굴암, 서울의 종묘,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함께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가구식 석축(화강석을 마치 나무로 만든 가구를 짜듯이 구성하는 기법)으로 신라 석조 건축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청운교 (아래 부분) 백운교 (위) 그리고 자하문

청운교와 백운교

   범영루 우측(동쪽)에 있는 33층 돌다리다. 석가모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으로 오르는 33층 돌다리다. 33천을 상징하는 것으로 헛된 욕망을 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걸어 올라가는 다리라고 한다. 45°로 경사가 져 있다.

청운교 백운교 홍예와 자하문 / 설명판

   다리 아래쪽의 홍예(U자를 거꾸로 한 모습)로 옛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래 다리(일반인의 세계)가 청운교이고 위 다리(부처의 세계)가 백운교이다.     

연화교(아래 부분)와 칠보교(위)와 안양문

연화교와 칠보교

   범영루 좌측(서쪽)에 있는 18 계단 돌다리다. 극락세계를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는 다리다. 극락전으로 통하는 안양문과 연결되어 있다. 전체 18 계단 중,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다,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다.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하다고 한다면,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다.      

다보탑

다보탑(多寶塔)

   대웅전 뜰에 다보탑(우측, 동쪽)과 석가탑(좌측, 삼층석탑)이 마주 보며 서있다. 높이는 각각 10.29m, 10.75m로 비슷하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 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 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다.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 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었다.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만 남아있다.     

석가탑

석가탑(釋迦塔, 3층 석탑)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불국사가 창건된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이다. 목조건축을 본 따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추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1966년 9월에는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다.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에서 여러 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다. 그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을 발견했다.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린다.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있다.     

대웅전

대웅전(大雄殿)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계(多包系)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이다. 건물 내부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으며, 금모루단청을 칠하였다.     

이 건물의 앞에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좌우로 놓여 있고, 둘레에는 1973년에 복원된 회랑(回廊, 담벼락)이 둘러져 있어서 부처를 모신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     

무설전

무설전(無說殿)

   경론(經論)을 강술(講述)하는 강당이다. 말로써 경론을 강술하는 곳임에도 무설(無說)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라고 하는 수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 (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돌아온 의상(義湘) 대사가 최초로 강론을 하였다. 1593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48년과 1708년에 중건하였다.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유지(遺址)의 기단 위에 옛 크기대로 32 칸으로 지었다.      

비로전(毘盧殿)

   1973년에 조성된 법전으로,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 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이 모셔져 있다.     

관음전

관음전(觀音殿)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성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방형 건물로 내부에는 4개의 안두리 기둥이 있고 다포식의 사모지붕을 얹었다.     

극락전

극락전 (極樂殿)

   높이 1.66m의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법당이다. 벌어진 어깨, 당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에서 사실적이며 세련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나한전

나한전

나한전 주변에는 무수한 돌탑들이 있다.

사리탑

사리탑

   불국사 강당 뒤쪽의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이다. 평면이 8 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 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불국사 팸플릿 (경주시)

<참고 자료>

-. 불국사 홈페이지

-. 경주 관광 홈페이지

-. 불국사 (경주시 팸플릿)

-.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전     


글이 길어져 분황사 편은 다음 회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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