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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와 기립박수 그리고 진정성

by 오지


mic-3989881_1280.jpg pixabay

엔프피(ENFP)에게 처음 시작이 뭐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의식의 흐름대로 사는 삶. 시작한 계기가 뭔지 뭐 그리 중요하겠나. 성악을 갑자기 왜 배우고 싶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올 1월, 집 근처 센터의 성악강습반에 등록을 했고, 지금까지 매주 1회 그곳에 간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한 가지 목표는 있었다. ‘잔향’이라는 가곡을 멋지게 불러보고 싶다는 욕망. 나름 박자 감각은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 약해진 성대는 “돌고 돌아, 돌고 돌아”하는 클라이맥스에 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고, 숨 쉴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음표가 남았는데 소리는 식도를 타고 뱃속으로 사그라지기 일쑤다. 자칫 밋밋한 박자와 멜로디의 가곡에는 반드시 고음을 내는 파트가 있는데 그걸 마치고 나면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할 것처럼 얼굴이 벌개진다. 올 연말까지 성실하게 수업을 들으면 ‘잔향’을 완곡할 수 있으려나.

사실 취미로 하는 반이기 때문에 개인의 잘못을 고치고 강점을 두드러지도록 하는 맞춤별 수업은 불가능하다. 강사와 (무려) 반주자도 있지만 30명이나 되는 사람들 각자의 실력 향상이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런 목적으로 개설된 강좌가 아님이 분명한 건 악보 그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알려주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는 거다. 합창을 듣고 난 후 강사는 우리가 잘못 부른 부분을 연습시키고 다시 부르는 식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발표회를 하니 개인의 실력이 드러나는 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발표회를 하며 얻게 된 성찰은 두 가지다. 일단 하나, 수업을 듣는다고 음치, 박치가 해결되는 건 아니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기술적인 완벽함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게 두 번째다.

이 수업에서는 성대마저 늙어버린 나도 상당히 어린 쪽에 속한다. 나의 수업 참여 의복은 운동을 마치고 온 트레이닝 플러스, 운동화를 신고, 정돈 안 된 곱슬머리가 매우 어지럽다. 반면, 여성 회원들은 미용실에 다녀온 것이 분명한, 드라이한 헤어에 꽃이 흐드러졌거나 원색의 알록달록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남성들은 스카프와 모자를 매치한 편안하면서도 멋스러운 옷차림이다. 메이크업은 고사하고 외출할 때조차 옷차림과 헤어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나는 그 간극이 부끄러운지 “오늘 발표회에요? 왜 때문에, 이렇게 차려입으셨어요?”를 반복하고 있다.

정작 가장 두드러진 간극은 ‘진정성’에 있다. 나 같은 ‘막귀’도 그걸 알아챌 수 있다는 건 덤으로 알았다. 70대를 훌쩍 넘은 여성이 정과 성을 다해 노래를 부를 때, 설사 그분의 음치와 박치를 고칠 길이 없다는 게 분명하더라도 듣는 이의 마음이 말랑해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매달 한 번씩 깨닫는다(재밌는 건 그분이 점점 박자를 잃고 반주와 따로 갈 때 강사의 얼굴이 빨개지는 거다).

이 강습을 얼마나 오래 듣던, 노래 실력 상승에 대한 기대는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하다는 건 진즉에 알았다(발표회 때 울컥하게 만들었던 그 분은 성악반의 ‘고인 물’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나는 예쁘게 꾸며서 내는 인간의 노래라 해도 진정성이 곁들여질 때 얼마나 울컥하게 되는지, 그 순간을 놓질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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