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 일인지 그동안은 존재감이 없었던 징크스 하나. 내가 명절이나 내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을 싫어하는 이유였다. 그런 날에는 꼭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다투거나 아니면 혼자 괴롭거나, 결국 외로움으로 종결되는 하루. 내가 어떤 기념일도 싫다며 안 챙기는 이유이기도 하고, 특별한 날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습관이 생긴 배경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런 날은 특별한 이벤트 없이 보내는 게 내 오랜 습관 중 하나다. 그러다보니 일부러 생일 당일에는 아무도 안 만나는 일이 많았고, 만나는 사람이 없으니 관계에서 상처받을 일도 없었더랬다. 아이들이 생긴 뒤로도 비슷했다. 선택할 수 있다면 그런 날엔 혼자 있기를 택했다.
올 크리스마스 연휴엔 아이 대회가 있었다. 이틀을 야외 축구장에서 지내게 된 후 25일 하루는 집에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었고 그렇게 보낼 생각이었는데. 가족 관계도 인간 관계인데 내가 그걸 깜빡했다. 나한테서 붙어있는 징크스. 크리스마스라고 별로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옥처럼 만들 필요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이와 하던 말싸움이 부부 싸움이 됐다. 대화도 별로 없는 부부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날선 언어들을 퍼부었다. 아이 앞에서 싸우는 게 최악인데 지금까지 두어 번 그랬던 것 같다. '8년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무슨'과 '그러면 그렇지' 사이.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사소한 불행을 체념하는 건 예상외로 쉽다.
연말에 들이닥친 현타를 처리하지도 못했는데 거기에 이런 분위기까지 견뎌야 할 판이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더라니 자주 쓰는 유리그릇을 깨뜨렸다. 오전에 독서모임을 진행해야 하는데 방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예전 같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안 나갔을 게 뻔한 정도의 마음 상태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다면 바로 그 부분이다. 책임감이 그나마 좀 생겼다고나 할까. 무언가 나중에 곤란해질 일은 어떻게든 막아내는데 집중할 수 있다. 멘탈 관리라는 측면에서 나아진 게 있다면 그 정도였다.
억지로 나간 자리였지만 또 나가면 괜찮아지는 게 가끔 신기하긴 하다. 수상한 기색 없이 모임을 진행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한 해를 보내는 인사를 건넨다. 이게 또 이렇게 되는 구나. 어쩌면 나는 내 멘탈을 너무 하찮게 평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무너질 것 같았는데 이렇게 웃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존재구나, 내가.
모임에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구절 하나를 나누었다. '과거는 눈 앞에 있고 미래는 등 뒤에 있다'는 거였다. 언뜻 생각하면 뒤집힌 게 아닐까 싶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과거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등 뒤에서 오는 미래는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는 징크스와 같다. 스트레스와 마찬가지로 내가 인식하고 명명하는 순간 실체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여차저차 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달랐다. 이래서 내가 성격검사하면 외향성이 강한 걸로 나오는 걸까 싶었다.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다면 당연히 E 아닌가.
가기 싫은 송년회를 앞두고 있었다. 송년회니 자율참석일 것 같지만 필참이다. 필참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반골 기질이 발동해 '죽을 거면 이 송년회 하기 전에 죽자'하는 심정이 됐다. 내 일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안 갔지만, 이건 내 일이기도 하고 아이 일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나이 들어서 원치 않는 인간관계는 과감히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견디는 걸 죽기 전엔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