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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Dec 18. 2022

트라우마, 딜레마

이태원 참사 49재에 부쳐

뭐라도 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내내 지냈다. 그렇게 오십여 일을 지내다보니 입술에는 물집이 터졌다. 밤에 머리만 대면 잠에 들 수 있도록, 그래서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휘감지 않도록 낮에 몸을 바쁘게 놀린 탓이다. 덕분에 오만가지 생각에 무너지는 일은 없지만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감각을 도처에서 느끼고 있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냥 길에서 만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이 짠하고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게 슬픔의 메시지라도 되는 양 다가온다. 가끔은 마스크를 쓰고 모자로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뒤늦게 발견한 코로나의 쓸모.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지옥이다. 마을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몸이 끼어 있었던 날, 그날 나는 공황을 경험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감각을 느꼈고,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참사 현장이 어땠을지, 희생자들의 고통이 어땠을지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터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오열하는 내게 적게나마 공간이 생겼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우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가지 못하겠구나. 붐비는 시간대에 대중교통 이용은 어렵겠구나.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호흡이 안정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2014년에 이어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트라우마 원형.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아바타 2> 같은 영화를 보다가도 세월호를 떠올리며 눈물이 터지는 일 같은 것. 영화 뒷부분에 배가 침몰되고 노란색 리본 같은 해양 생물체가 나오는 장면에서 세월호 침몰의 순간이 어땠을지 떠올리며 펑펑 울게 되는 것.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세월호를 염두에 두고 그 장면을 연출했을 리는 없겠지만 세월호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그 장면에서 어김없이 눈물이 터지는 것.

물론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입증하는 표식 같은 게 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건이, 하나의 참사가 트라우마의 원형이 된다는 것이 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만 겪는 아픔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위안이 있다고 한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49재를 앞두고 한 이태원 참사 유족이 이런 말을 했다. 용산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참사 이후에 49재가 되도록 이태원을 지나가지도 못하겠다고. 49재 때 처음으로 참사 현장 인근을 가게 되는 거라고.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나 또한 추모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이태원 근처를 지나가지도 못했기에, 그래서 더 공감되고 그래서 배로 슬퍼지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나는 이 느낌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보다 나아지는 게 진보라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퇴보의 시대다. 그것도 한 삼십년쯤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아무리 나이가 들면 과거에 산다고 하지만 이런 걸 기대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몸을 바쁘게 놀려도 떨쳐낼 수 없는 무력감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뭘 해도 소용없어. 그들은 신경도 안 쓰고 꿈쩍도 하지 않을 거야. 어차피 공감이란 저들의 영역이 아니고 그들의 선의에 기대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지금껏 그랬듯 불가능한 전제니까.

일상에서 겪는 우울감의 원인은 거기에 있다.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 이 상태로 앞으로 4년 넘게 지내야 한다는 명징한 사실. 그 이후에도 내가 아는 정의는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뼈아픈 예감. 내가 견디고 삼켜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함부로 희망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어느 쪽이든 바람직한 것은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 귀결이 저들에게 이득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이 트라우마를 떨쳐내기를 바라면서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그냥 쉽게 내주지는 않겠다. 그런 다짐을 한다.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 어떤 희망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할 것이고,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어렵겠지만 스크래치 한 번 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절대로 그냥 앉아서 순순히 내주진 않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의 마음가짐뿐이다.

우리 사회가 퇴보하더라도 나는 좀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나라도 진보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이 종종 슬프고 착잡하지만 그래도, 나라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정신줄을 붙잡는 것만이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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