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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May 04. 2021

사주와 운명

세탁기가 고장 났다. 결혼할 때 친구들이 사준 드럼 세탁기인데 몇 번 말썽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아예 맛이 가버렸다. 헹굼에서 멈춰서 더 이상 진행이 안 되길래 배수필터를 열어 물을 빼줬더니 다시 돌아가고 멈추기를 반복. 서비스센터에 예약을 하고, 기사님이 와서 배수펌프를 교체했으나 역시나 돌아가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PCB(맞나?)가 고장 난 거라 교체를 해야 하는데 이 모델의 경우는 더 이상 부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허허. 기사님도 나도 멋쩍게 웃었다. 5월 초인데도 땀 흘리며 열심히 수리를 하신 기사님은 서비스 처리가 안 됐으니 출장비는 받지 않는다며 아까보다 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한 나도 어정쩡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고생하신 기사님에게 음료수 한 병을 전해드리고 나자 현타가 밀려왔다. 세탁기를 사야겠네. 헐.     


13년 됐으니 그만하면 잘 쓴 셈인데 현타가 밀려온 이유는 사주 때문이었다. 작년부터 사주 명리학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올해 예상치 못한 목돈 나가는 일이 생긴다는 결과가 나왔었다. 아무리 대처하려고 노력해봐야 어쩔 수 없이 지출이 발생할 거라는. 고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세탁기가 그리 되고 보니 ‘사주는 정말 과학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세탁기 구입 정도에서 끝나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누군가 아파서 목돈이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가전 구입이 훨씬 낫지 않은가.

세탁기로 끝나면 좋으련만 4월 말부터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결혼했을 때 산 물건도 아니고 산지 2년밖에 안 된 무선청소기와 훈제오븐까지. 훈제오븐에서는 연기가 나면서 소리도 이상하길래 먼지도 제거하고 기름기도 수세미로 박박 닦아 조립까지 했건만 팬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의도치 않은 지출이 있다는 명쾌한 결과. 사주 공부를 진작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만약 공부가 깊었다면 과연 뭘 바꾸고 싶었던 걸까. 지금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일까. 돌이켜보면 크게 후회할 일도 없고 사는 게 불만족스러운 건 아닌데 나이가 들면서 좀 재미가 없어졌다고 할까. 아무래도 나이에 맞는 역할이 있다 보니 행동의 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고,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다 보니 하는 말과 생각도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재미가 없으면 행동하는 데 동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재미없는 일 반복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편이었다.

인생의 풍파를 겪은 사람들은 심하게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사는 게 편안하니까 그런 소리 하는 거라고. 인생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하겠지만 나도 그리 평탄하게 살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런 소리도 할 수 있는 거다. 프로필 소개를 보면 알겠지만 갑작스럽게 암에 걸렸고 이년에 걸쳐 수술을 받았으며 그밖에도 자잘한 사건ㆍ사고를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사주상 일간인 나를 극하는 칠살이 강한 편이라 이걸 제화하지 못하면 비명횡사할 운명이라니 그런 얘기쯤은 용서 되지 않으려나.

다행히 제어하는 기운도 강해 결과적으로 사건이나 사고를 수습하면서 발전하는 인생이라고 봐야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건이나 사고가 없으면 발전이 없으니 망하는 인생이랄까. 이런 인생이다 보니 그저 웬만한 일엔 헛웃음이 나오는가보다. 어쩌면 그래서 암 진단에도 비교적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는지도.    

 

어쨌든 초학자인 내게 모든 건 결과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사주를 공부한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어버리거나 늘 만세력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니다. 애초 명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아이를 이해해보기 위해서였다.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검사 결과를 기계적으로 읊는 상담사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더 잘 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사주팔자를 통해 아이와의 관계를 읽다보니 의도치 않게 남편하고 말이 안 통하는 이유를 알게 된 건 왜인지.

어쨌든 명리학은 심오한 철학적인 가르침도 얻을 수 있고, 무엇보다 단순히 운을 점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관계, 그러니까 개인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관계성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맘에 든다. 주변 지인들의 사주팔자를 들여다보며 혼자 낄낄 거리며 ‘맞네 맞아’ 하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섣부른 충고나 조언은 초학자인 내게 아직 무리라는 점만 잘 지키면 된다.

중요한 건 운명을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느냐다. 내가 아는 한, 명(命)을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없다면 뭐하러 알아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알고 당하는 것과 모르고 당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 선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라면 알고 당하는 쪽을 택하겠다. 느닷없이 치고 들어오면 대처할 생각도 못 하고 당황만 하다 끝나기 마련이니까.

무엇보다 공부를 통해 아이들을 이해해보고 싶다. 아이들이 겪게 될 풍파에 엄마인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임기응변식으로 그때마다 땜질하는 방편을 쓰고 싶진 않다. 뭐, 사주를 보고 운명을 예측하려면 일단 공부만 몇 년 해야겠지만. 명리학 도사가 되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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