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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밑바닥까지, 너와 함께 <해피 투게더>

by 오지

어떤 영화는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전에 봤을 때 보이지 않았던 점이 눈에 띄기도 하고, 새로운 인물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따라가며 색다른 감각을 얻기도 한다. 갑자기 한 장면에 꽂혀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벅찬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는 볼 때마다 아픈 영화다.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90년대 우리나라에는 왕가위 감독 팬이 상당히 많았다. <해피 투게더>의 개봉소식이 들리자 기대가 컸는데 당시만 해도 퀴어 영화는 생소한 편이었다. 동성 간의 베드신이 묘사된다고 해서 심의과정에 어려움이 있었고 여러 곡절 끝에 개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장면인데 우리나라 민주화가 87년 이후에 이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당시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그전까지 퀴어 영화를 별로 접한 적이 없었으면서도 베드신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극장에서 기억했던 장면은 택시에서 보영이 아휘에게 기대는 장면, 두 사람이 탱고를 추는 장면, '역시 왕가위' 할 정도로 훌륭한 OST 정도였다. 사랑이 뭔지 잘 몰랐던 20대의 나는 영화의 색감과 왕가위 감독 특유의 핸드 헬드 장면,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 같은 이과수폭포의 이미지만 어렴풋이 기억했다. 당시 내 평가는 ‘괜찮은 영화지만 사람들 평가는 상당히 과장됐네’ 정도였다.

그 정도 심상을 남긴 영화를 왜 다시 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디렉터스컷이 나왔을 때 다시 봤고, 넷플릭스에 리마스터링 버전이 나와 또 한 번 봤다. 디렉터스컷과 오리지널의 미묘한 차이를 내가 간파했기 때문일 리는 없을 텐데 나의 감상은 달랐다. 디렉터스컷을 봤을 때는 아휘에게, 리마스터링 버전에서는 보영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너무나 예쁜 색감과 대비되는 절절한 사랑. 비로소 이과수폭포의 이미지를 왜 그리 오래 보여줬는지 이해가 됐다.

처음에는 보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 아휘의 감정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알면서도 결국 받아주고 마는 아휘가 바보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바보 같으면 어떤가, 그게 사랑인데. 공평하게 주고받는 관계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날 지 예측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파괴적인 사랑의 감정은 아니란 걸 안다.

보영의 경우는 좀더 설명하기 어렵다. 그의 방식은 설명이 불가능한 쪽에 가깝다. 보영의 캐릭터는 사이다가 필요한 캐릭터다. 대체 왜 저렇게 이기적인지 이해가 안 갈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보영의 사랑은 거짓이거나 기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보영의 아휘에 대한 사랑 또한 꽤 깊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긴 하나 분명히 그렇다. 보영이 왜 그렇게 비뚤어지게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았고, 보영 본인도 아마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보영이 아휘가 떠난 집에 담배를 잔뜩 사다놓는 장면이나 장난스러운 질투, 특히 누구에게인지 모르지만 얻어맞은 채로 아휘 앞에 나타난 것을 보면 그의 감정 또한 사랑이다. 그에게는 아휘에게 돌아갈 구실이 필요했을 것이다.

분명히 쉬운 사랑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걸 삼켜버릴 것 같은 이과수폭포와 같은 사랑이 어디 쉽겠나. 그런 사랑은 위험한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그런 사랑의 경험이 누군가를 살게 만들기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바닥까지 내려가 본,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의 성장이란 얼마나 찬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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