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대치동에서 과외를 한 경험이 있다. 정말 또릿또릿한 인상을 가진 여학생이었다. 이해력이 좋아 설명하는 것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과제에 대한 성취도가 높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참 난감한 학생이었다. 분명 개인적으로 지도해 보면 수학적으로 우수한 성취를 보이는 학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시험을 보면 반전이 일어난다. 이 정도 문제를 풀지 못할 리 없는데 싶은 문제를 틀렸다. 한두 번의 실수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가르쳐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점수를 받는 학생이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수업을 통해서만 잠깐잠깐 만나는 학생에 대해 맘대로 추론하고 결론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교직 생활을 계속 하면서 그때 그 학생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강박’이었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강박. 물론 강박이 있다고 모두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강박이 오히려 약이 되어 시험을 더 잘 보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강박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학생들에게는 평소 실력이 발휘되지 않는 마법이 일어난다. 불이 나면 사람의 지적 능력은 급작스럽게 떨어진다고 한다.
침착성을 잃고 당황하기 시작하면서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것이다. ‘소화기 작동법을 누가 모르겠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눈 앞에 큰 불이 나면 소화기 안전핀 빼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공포나 불안 등의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지적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황 대처 능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는 것이며, 평소에 잘하던 일조차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큰 시험에서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 소소하게는 시험이 시작되기 하루 전부터 몸살이 나는 학생, 멀쩡하다가 시험 시간에만 복통이 오는 학생, 평소엔 현명하고 수학을 꽤 잘하는데 시험만 보면 경직되어 시험을 망치는 학생이 이런 증상을 보이는 경우이다.
결과가 나쁘면 실망이 찾아온다. 주변의 실망, 그리고 본인의 실망도 한몫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망의 경험이 축적되면 트라우마가 된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공부에 대한 흥미가 지속되기 어렵다.
이런 수준으로 들어가기 전에 적절한 조치를 하여 학생이 시험에 대한 강박을 갖지 않도록, 또는 강박이 지나친 독이 되 않도록 해야 한다. 트라우마가 생긴 다음에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더욱 힘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