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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여름 Sep 05. 2023

신(新)기록

매일 새로운 일 #5. 수술

2023년 8월 7일

오늘의 신(新)기록 : 수술


[이전 에세이와 이어집니다. 이전 에세이 읽으러가기 ↓]

#4. 수술할 결심

https://brunch.co.kr/@summeroflove/5



나는 대부분 사전 조사를 많이 하는 것에 비해 결정은 다소 충동적으로 내리는 편이다. 예전에는 '이런 내가 괜찮은 걸까, 왜 실컷 고민해 두고 결정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라는 생각 했는데 지금은 그만큼 많이 알아봤기에 더 이상 따져보지 않고 결정해도 나름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 일거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술도 그렇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고, 생각보다 가벼운 수술을 권유했기에 당일에 바로 수술을 결심했고, 날짜를 잡고 호르몬 주사까지 맞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지 않고 주사까지 맞고 돌아와 영 심란했다. 집에 왔더니 생각보다 주사를 맞은 곳이 아팠다. 덜컥 겁이 나 일기장을 펴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날 일기에는 대략 이런 글이 써져 있다.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치가 좋지 않아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빈혈 수치를 올리기로 했다. 주사를 배에 맞았는데 뭉쳐있고 아프다. 난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잠깐 저런 생각을 하며 주사의 부작용에 대해 알아봤던 것 같다. 그러다가 멈췄다. 그만! 이미 결정했고, 실행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이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집착하거나 걱정하지 말자. 좋은 생각만 해야지, 나는 여태까지 건강에 있어서 나름 운이 좋았지 않았나. 

그렇게 총 2번의 호르몬 주사를 맞고 수술일이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수술 자체는 대단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수술 당일에는 혼자가 아닌 혈연관계의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했고, 마침 한국에 와있던 언니가 같이 가주기로 하였다. 엄마보다는 언니가 더 마음이 놓였다. 부모님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고, 언니는 나만큼 건강에 대해 염려가 많은 사람이라 수술 전후로 혹시나 예민해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


수술 전 날, 부모님 댁에 머무르던 언니가 서울로 온 김에 데이트를 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언니가 결혼 후 주로 해외에 살고 있어 이런 기회는 흔치 않기에 가고 싶고 먹고 싶었던 곳을 추리고 추려 신나게 놀았다. 

안국역 근처에서 솥밥을 먹고 창덕궁 근처에서 커피를 마셨다. 삼청동을 걷고 비가 오길래 택시를 타고 명동으로 가 유튜버가 될 언니를 위해 (아직 채널개설 없을 무. 조속한 진행 바랍니다.) 애플스토어를 구경했다. 그리고 광화문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언니의 숙원사업이었던 눈썹왁싱을 위해 여의도에 갔는데 뉴진스가 와서 한참을 구경했고 마지막으로 다시 애플스토어에 갔다가 귀가했다. 덕분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빨리 마취를 하고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수술 당일. 수술은 아침이었고, 생각보다 걱정되지도 않았고 담담했다. 준비가 끝나자 교수님이 입장했다. 


"우리 한 번 잘해봐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

...


"김여름 씨, 엉덩이 좀 들어보세요."

"...?"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한동안 비몽사몽이라 기억나지 않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침대에 실린 채 입원실로 와 잠이 깨지 않은 상태에 언니에게 계속 카스텔라와 우유를 사 오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물론 언니는 카스텔라가 아닌 건강에 좋은 삼계죽을 사 왔다. 퇴원 후에도 언니가 살뜰히 보살펴주었고 난 일주일 동안 누워서만 지내며 건강을 차차 회복했다.


수술이 끝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체력이 아주 좋아졌다. 잘 몰랐는데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일이 아주 적어졌고 아침에 상쾌하게 눈을 뜬다. 그리고 자꾸만 나가고 싶다. 지난 상반기에는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외출하기가 꺼려지고 쉽게 피곤해져 금방 집에 돌아오고는 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좋다. 출근길 너무 아파서 조퇴를 했던 아침, 혼자서 병원을 다니다 어쩐지 서러워 눈물을 삼켰던 어느 오후, 심란한 마음으로 선택을 미루며 고민만 하던 밤. 그 시간을 오롯이 짊어지고 혼자서 해낸 내가 자랑스럽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돌보았다는 뿌듯함이 느껴져서 혹시나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확신이 더해졌다.  


앞으로도 나랑 잘 지내자. 고생했어, 잘했어!!


2023년 8월 7일

오늘의 신(新)기록 : 수술


(좌) 퇴원을 기다리며 

(우) 퇴원 후 간절했던 커피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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