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이 너무 힘든 나에게
너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 뭔지 잘 알아.
살면서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본 적이 없는 너로써는 무슨 일을 하든 땅으로 꺼질듯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검색하고 조언을 듣는 것이 익숙하지. 그 중에 마음에 드는 하나의 말을 뽑아 올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줘가면서 확신을 키우는 것이 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임을 알아. 그렇게 고민하고 키워올린 것도 염려의 비가 내리고 따가운 질타의 바람이 불면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뽑혀져 쉬이 날아가버린다는 것도. 그렇게 되면 너는 다시 땅으로 꺼져버리고 똑같은 고민이 반복되겠지.
결정이라는 것도 사실 팩트에 입각하기보다 어느 하나의 가설을 붙잡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단다. 그 가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느냐가 핵심이기에 열심히 살을 붙여가며 내 결정에 이유를 더해갈 때면 꼭 그런 기분이 들었어. 물컵에 빨대를 꽃고 숨을 후루루루룩- 불어 넣는 기분. 바글바글 잠깐의 기포와 경쾌한 소리를 내다가 이내 뚝 끊어지고 마는 느낌.
그보다는, 좀 더 만져지는 미래를 도화지에 그려보면 어떨까? 가이드라인은 이미 너의 머릿속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가령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 '싹'이 너의 품에서 가릉거리고 있을 때의 풍경, 이불을 급하게 뛰쳐나가지 않아도 괜찮은, 아침시간을 그 애를 만져주는 데 모두 할애해도 된다는 평안한 안도감.
그런 시간을 지켜낼 정도의 미래라면
나는 한번 그려봐도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