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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llalawoman Nov 05. 2022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너에게

마흔이라는 나이가 켜켜이 쌓아온 인생의 지층에 균열을 내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들,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온 것들, 미처 듣지 못했던 마음에 대한 것들을

깨달아가면서 혼란과 때로는 애잔함을 느끼면서 나 자신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나이... 그게 뭐 별건가'했었다.

시간이 흘러 쌓이는 숫자일 뿐이라 외면했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그 시간에 흘러 온 나의 세상은 너무도 달라졌다.

옳고 그름을 따지던 나는 더 이상 옳고 그름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내가 속한 세상이 너무 진흙탕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인간에 대한 선과 악의 양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지 않으면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의 온갖 시끄럽고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인간은 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과격하기까지 한 인간이 만든 세상의 소음에 도망칠 수도 없고,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너무도 잔인하고, 너무도 슬픈 현실 속에서 나도 그들도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운 마음을 붙잡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한 나 자신에 좌절감을 느낀다.


마흔이라는 인생의 중간 언저리에 있는 나는 아직도 하루에 몇 번씩 죽고, 또 살아난다.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이 내가 꿈꾼 것들을 이뤄내고 평 안 함 속에 살고 있을 줄 알았다.

허나, 현실은 그 와 반대로 사춘기보다 더한 방황과 혼란을 겪고 있고 더 많은 비바람을 맞으며 버텨내고 있다.


인간에 대해 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무언가 알게 된 것 같아서 이제 빛이 보이려나 싶으면, 나를 끌어 앉히는 결핍과 좌절들이 어깨를 세게 짓누른다.

시끄러운 뉴스를 본 것에 대해 후회하며, 왜 우리는 나아질 수 없는지를 한탄하고 비관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면 나아질까? 세상 일에 대해 알지 못하면 조금 더 편안해질까?  

이 순간만 지나면 나아질까?


나는 이곳에 살고 있고,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 아이에게 두렵고, 아프고 힘들지만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질문한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앞으로 이 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완벽한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만 보여주고 느끼고 살아가게 해 주고픈 엄마의 마음과 반대로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어려움과 고통이 혼재하고 있기에

혹여, 나 없이 맞이할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그리고 혼란스러운 갈등들을 아린 마음을 부여잡고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내 아이는 '더 좋아질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잖아요'라며 판도라의 마지막 선물을 기억한다.

그러길 제발 그런 세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나는 아이의 말에 희망을 품는다.

참으로 다행이다. 이런 아름다운 존재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네가 더 좋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애써보겠다. 다짐한다.

내 다짐이 거대한 우주의 먼지와 같이 보잘것 없이 작더라도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리라 결심한다. 그리고, 너와 내가 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마법의 주문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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