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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Jun 17. 2021

아픈 개

로맨스예요

고향에 돌아왔다.

이유 없는 반항심은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은 그랬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죽을 쑤었다.

"그러길래 그 아픈 강아지를 무엇하러 주워 왔어?"

나는 말 없이 신발코로 애꿎은 땅만 팍팍, 찼다.

그 애 다 나으면 할머니는 저보다 더 예뻐할 거잖아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여 이 죽이나 가져가! 휘휘 젓다가 다 튀지 말고, 얌전히 먹여."

네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잣죽을 들고 조심조심 손님방으로 간다.

"얘, 일어나."

"......"

죽었나?

가슴팍을 쳐다보니 미약하게 오르내리는 게, 숨은 쉬고 있다.

들고 있던 죽 그릇을 이불 옆에 내려두고 덜 닫은 창호 문 사이 저 멀리 숲을 바라본다.

"너, 다 나으면 나랑 숲엘 가자."

"......"

"밤에 저길 가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어."

"......"

"낮엔 다람쥐를 볼 수 있다?"

"......"

"염병."

돌아오는 말 없는 독백은 재미없다.

듣는이가 원래부터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코앞에 눈 감고 색색 자는 애를 두고 혼자 말하려니 재미가 금방 없어졌다.

말은 관두고, 냅다 옆에 엎드려 누워 눈 감은 얼굴이나 본다.

속눈썹도 기일고... 피부도 하얀 게...

아픈 애 얼굴 보는 게 잘하는 짓인가?

괜히 심통이 나서 아직 식지 않은 잣죽을 허겁지겁 삼킨다.

배부르니 졸렵다.


"이놈자식, 일어나!"

"......"

"어여 일어나래도!"

우당탕-

배부르니 졸리다 생각한 것이 이렇게 꼬박 잠들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머니의 언성에 벌떡 일어나 앉아 입가를 소매로 북북 닦는다.

"애 깨워서 죽 먹이랬더니, 왜 니가 다 먹고 자고 있어?"

혀를 차며 나무라는 할머니에 괜히 민망.

"나는 분명히 깨웠다."

잘한다, 잘해.

할머니의 핀잔은 몇 분간 멈추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아픈 강아지를 데려왔고,

자는 모습도 몰래 훔쳐본 게,

괜히 민망해서 잣죽도 내가 다 먹어버린 게.

대충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첫 문단을 위한 글.

귀찮아서 금방 마무리함.

비 올 때 이어서 길게 쓰고 싶다.

그런데 안 할 걸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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