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대한 단상
2011 아시아 시리즈는 한국 야구 역사상 의미 있는 해였다. 2005년부터 이어지던 코나미컵(05~08)으로 불리던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 소속 클럽팀이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었다. 우승의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전력이 강한 일본팀이었다. 물론 07년 주니치 드래곤스, 08년 세이부 라이온즈를 SK와이번스(현 SSG)가 격파하기도 했지만 1라운드에서였고 결승에서 지거나 대만 팀인 퉁이 라이온즈에게 일격을 당해 득실차로 결승 진출에 실패해 우승의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2011 아시아 시리즈는 08년도 이후 스폰서 문제로 중단되었다가 3년 만에 부활했다. 삼성 라이온즈, 소프트뱅크 호크스, 퍼스 히트, 퉁이 라이온즈 이렇게 4팀이 참가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경계해야 되는 팀은 일본 소속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였다. 호기롭게 1차전을 붙었으나 결과는 9:0. 충격의 영봉패였다. 무기력하게 져버렸다. 하지만 삼성은 차분하게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퍼스 히트와 퉁이 라이온즈를 연달아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일전을 준비했다.
1 선발 장원삼을 내세웠고 오승환을 마무리로 내면서 5-3으로 1차전과는 다른 경기력을 선보이며 우승에 성공했다. 허허실실의 작전이었다. 버릴 경기는 확실히 버리고 전력 노출을 최소화한 뒤에 반드시 이겨야 되는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이후 왕조를 구축했고 그때 삼성의 사령탑은 지금 국가대표를 이끄는 류중일 감독이었다.
감독이 똑같아서일까.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야구 금메달을 따는 과정은 묘하게도 2011 아시아 시리즈와 닮았다. 설사 1차전에서 진다 할지라도 결승에서 이기면 된다는 전략. 물론 1라운드에서 대만전과의 경기에서 일부러 힘을 빼고 했다는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되, 지면 탈락하는 일리미네이션 게임이 아니기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계산이 있었다. 이후 경기를 지면 탈락하기는 했지만 태국, 일본, 중국을 이긴 다음 대만과의 결승에서 2:0으로 1차전의 4:0의 영봉패의 수모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금메달을 따내었다. 결과는 리그를 중단하면서까지 최상의 전력을 꾸렸던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같았으나(대만에게 1차전 지고 우승한 과정마저 똑같았다) 이번에는 23세 이하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들로 엔트리를 구성한 것이라서 유의미했다. 이 와중에 한국야구의 세대교체를 성공했다는 평가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2006년과 2023년은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가 공존한 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순서가 뒤바뀌었을 뿐이다.
2006년은 1회 WBC에서 변방으로 여겨졌던 한국야구가 세계무대에서 야구 종주국이었던 미국을 이기고 일본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이기면서 4강 신화를 이뤄냈다. 그런데 그해 말에 열렸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대만은 물론 사회인으로 꾸린 일본(익히 알고 있듯이 표현상의 사회인이지 이들의 실력은 실업팀에 가까우며 이들을 따로 뽑는 드래프트도 있을 정도로 프로에 가깝다)에게도 지면서 동메달에 그친 것이다.
2023년은 코로나로 미뤄졌던 WBC에서 3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한국 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면서 인프라 구축, 유소년 야구 알루미늄 배트 교체 등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떠들썩했다. 그런데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며 순식간에 세대교체가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중요한 것은 WBC는 불과 반년 밖에 지나지 않았고 그때 나열했던 사안들은 아무것도 시행된 것이 없으며 시행되었다 할지라도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일어난 것은 정상적으로 정규시즌이 치러진 것밖에 없었다.
올해 3월로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언제까지 광현종인가?’
이 한마디가 WBC의 총평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을 살펴보면 베테랑을 기용할 수밖에 현실이었다. 젊은 투수들은 슬러거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했고 젊은 타자들은 상대 투수에게 빠른 구속과 제구력에 압도당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었다. 달랐다고 한다면 리그 중에 차출된 것이라 컨디션이 올라왔을 수도 있고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는 그때 없었던 문동주, 최지민, 윤동희, 장현석 등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되는 것은 참가팀의 수준이다.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팀 중에 정말 팀의 원형을 갖춘 것은 대만과 일본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태국, 홍콩, 중국, 필리핀은 프로리그는 물론 마이너 리그나 NPB에도 진출한 선수가 없다. 대만도 마이너리그 더블 A로 일본은 늘 그래왔듯 실업팀으로 꾸렸다. 상대적인 약팀들과의 대결이다. 물론 약체라고 해서 반드시 이겨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정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세 경기를 지켜봤다. 첫 번째는 홍콩과의 첫 경기. 10:0으로 이기긴 했지만 7회까지 2;0으로 앞서다가 뒤늦게 타격감이 폭발해서 이겼다. 그 사이에 번트를 대며 활로를 뚫어봤지만 득점권 찬스에서 번번이 범타로 물러나버렸다. 두 번째는 대만과의 두 번째 경기 린위민이라는 좌완투수를 공략하지 못하며 6회까지 끌려갔고(과거 천관위를 보는 듯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 세 번째 경기는 일본과의 경기다. 이기긴 했지만 경기 초반부터 번트 일변도의 공격으로 더블 아웃된 경우도 있었고 답답하게 이끌어갔다.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대회 초반 타격감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홍콩과 대만의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이전 WBC에서도 일어난 일이다. WBC처럼 1라운드에 전력에 출중한 팀을 만났다면 자칫 1패를 내주고 시작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너무나도 잦은 번트 시도다. 물론 수비가 약한 팀을 상대로 흔들려는 시도와 공격의 활로를 뚫으려는 시도는 좋으나 일본전처럼 일관적인 공격은 예측이 가능하고 상위팀을 상대할 때는 아웃 카운트 하나를 헌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장타가 실종이 되다 보니 분위기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중간에 최약체 팀을 상대하기 때문에 타력이 돋보였을 뿐이지 대만 2경기, 일본 1경기는 차례로 0, 2, 2점을 냈다. 마운드가 높았던 것이지 공격력이 살아났다고 볼 수 없다. 마운드도 상대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놀라운 것은 대만이었다. 더블 A에서 차출된 선수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선발이었던 린위민은 물론 구위가 좋은 마무리였던 류즈청, 1번 타자 쩡중서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선수들이 많았다. 결승에서 대만에게 이겨서 금메달을 땄지만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면 1승 1패였고 영봉패를 주고받긴 했지만 득실차는 4:2로 오히려 한국이 2점 모자랐다. 두 경기긴 하지만 백중세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두 가지 해석을 해볼 수 있다.
첫째는 더블 A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이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의 대표팀도 23세 이하 선수들이기에 지금의 선수들과 함께 성장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 선수들과 붙을 때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섣부른 판단이지만 한국야구의 수준이 더블 A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 수 있다. (유망주의 순위에 따라 더블 A여도 천차만별이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인 수준에서 볼 때) 줄곧 한국 리그는 트리플 A에서 메이저 사이 소위 쿼드러플 A를 지향하고 있다. 립서비스 이긴 하지만 외국인 선수들도 한국야구에 대해서 물어볼 때 위와 같은 답변을 심심치 않게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표본이 적긴 하지만 경기력에서 압도하지 못한다라는 것은 한 번 생각해 볼 점이다.
특히 대만에게 이긴 것이 2017 WBC 이후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많이 맞붙지는 않았지만 3전 전패였다. 이번에 이정후나 여러 선수들이 빠지긴 했지만 앞으로 만날 대만은 복병 이상의 상수에 가까운 적일 수 있다.
금메달은 분명히 축하할 일이다. 박영현, 문동주, 윤동희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세대교체라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안심했다가 지난 대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미 본 바가 있다. 세대교체를 위해 아직 거쳐야 될 단계들이 있고 변해야 될 것들이 많다. 이들이 주축이 되는 앞으로의 2026 WBC, 2028 LA올림픽에서의 성과를 지켜보고 봐야 된다.
당장 한 달 후, 곧바로 APEC(아시아 챔피언십)이 열린다. 이때의 성적에 따라 세대교체라는 단어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주도면밀해야 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