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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 Jan 24. 2021

1-6) 대장암 완치까지 D-1303

괜찮지 않다는 괜찮다는 말

 꼬박 3개월 만에 다시 CT실 앞에 섰다. 


 저마다의 가족들을 옆에 끼고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우두커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벽에 기대어 차례를 기다렸다. 전광판의 대기하고 있는 이름들이 하나씩 보였다. 이름 석자 중에 마지막 글자를 가린 명단들은 검사 중인 이름은 주황색으로 대기 중인 사람들은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채혈실에서 봤던 노부부가 떠올랐다. 할아버지 등에 매여있는 배낭이 멀리서 서울로 상경했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뚱뚱했다. 그 두툼한 배낭에서 물티슈를 소중히 꺼내 한 장을 빼서 할머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셨다. 땀이 나셨던 것 같다. 할아버지보다 체격이 좀 더 큰 할머니는 가만히 할아버지의 손길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저 익숙한 듯이. 이번엔 유독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는 당연한 듯이 나뿐이었다.


 병원에 오래 대기하다 보면 병간호를 하는 사람인지 병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인지 자연히 구분이 갔다. 병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은 보통 모자를 썼고, 손에 대부분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거나 휴지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표정은 지쳐있거나 멍하게 다른 곳을 응시했다. 간호하고 있는 사람들은 반대였다. 주로 약봉지나 서류들을 들고 있으면서 어수선하게 접수를 하거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병치레 중인 가족들을 쳐다보고 있곤 했다. 그 와중에 혼자인 사람은 별로 없었고, 별로 없는 와중에 내가 있었다. 


 오늘은 유독 피곤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서 너무도 졸렸고, 오후 진료가 잡히는 바람에 전 날 새벽부터 굶어서 무척 허기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가물가물한 검사다. 이런 검사를 5년이나 지속해야 한다니 까마득하다. 어떤 날엔 책을 들고 와서 읽고 있기도 했는데, 그건 초반에만 잠깐일 뿐 생사를 오가는 암병동에서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정말이지 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책을 쥐지 않은 손으로 휴대폰이나 만지작 거리게 되었다. 오늘은 검사 이후에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스키야키가 먹고 싶어 졌다.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기운이 났다. 금식 탓에 마시지 못한 커피 생각도 간절했다. 어쨌든 이 곳을 빠져나가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채혈을 하고, X-ray를 찍고, 그 2시간 뒤에 CT를 찍는다. 조영제를 넣고 찍기 때문에 CT를 찍기 전에 팔에 꼽는 주사 바늘은 조금 따갑다. 조영제가 들어가면 온 몸이 점차 달아오르면서 소변이 마려운 것처럼 온몸이 불타오르다가 결국 일을 본 것처럼 사타구니가 뜨거워졌다. 기분이 매우 나쁘지만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는 순간이라 다음이 두렵지 않은 그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 검사가 모두 종료된다. 대장 내시경이 없는 검사일이라 조금 더 편한 날이다. 


 “병원에 잘 갔어? 괜찮대? 아 참 다음 주에 결과 나오지?” 


 병원 가는 날을 종종 잊던 엄마가 무심한 척 전화를 걸어왔다. 혼자 있는 내가 저 멀리 제주에서 보였을까. 엄마 눈 앞에 아른거렸을까. 


 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휴대폰에 저장된 다음 검사일을 본다. 다음 주에 검사 결과를 듣고 나면 그 뒤는 또 3개월 뒤에 예약이 잡힐 것이다. 내가 암이라는 것을 잊을 만할 때쯤 다시 상기시켜주는 알맞은 주기다. TV를 보다가, 브런치를 보다가, 포털 사이트를 보다 보면 드문드문 암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그 와중에 직접 대답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오는데, 바로 암보험 권유 전화를 미처 스팸처리 못하고 받게 될 때가 그때이다. 그렇게 되면 괜한 시간을 나한테 낭비하시지 않게끔 난 재빠르게 이미 암에 걸려서 가입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종료한다. 그러다 가끔은 내가 혹 전화를 끊기 위해 농담을 하는 것처럼 느끼셨는지 아 암이 걸리셨다고요?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 대답에 화가 나기보다는 참 좋은 상품인 것 같은데 조금 아쉽군 하며 전화를 끊을 뿐이다. 


   나의 건강에 대해 딱히 불행하다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설계도가 조금씩 찢겨 뭉글뭉글 아지랑이 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후를 대비하라는 연금저축 앞에 주춤거리거나 5년 뒤 나의 직업이나 어떤 일을 하며 살까 하는 고민 앞에 고개를 떨구게 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달아나는 나의 먼 훗날들은 무덤덤한 내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이 정도의 심경 변화는 피해 갈 수 없는 치료의 한 과정이다. 중년에는, 노년에는 과 같은 말들이 일상에서 사라지면 지금 당장 떠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남는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라는 사람들은 정말 자신의 말을 지키며 살았을까.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난 오늘 서울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제주도로 갈 것이다. 내일 죽는다면 정리도 필요 없을 것이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고 제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완치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생활로 돌아가버리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나의 섣부른 설렘을 막아선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과 과거의 내 모습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데 나는 대답해 줄 말이 아직 없다. 


전국적인 폭설 소식이 있던 날, 엄마가 보내온 제주도 집 주변 풍경


 제주도 엄마 방에 붙어있던 작은 쪽지가 떠오르는 날이다.


눈물로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


누가 그런 소릴 엄마에게 그리도 무책임하게 한 것일까. 

휴가가 끝나 제주도를 다시 떠나오던 마지막 밤, 엄마의 책상에 앉아 쪽지를 가만 보다가 글귀 아래 이렇게 적었다. 


엄마 울지마. 다 괜찮아.


그리고 서울 여기, 혼자 있는 나에겐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울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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