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을 샀다. 원자재 표시가 없는 식탁과 고무나무 원목으로 된 식탁 둘 중에 후자를 택했다. 가로세로 80cm의 아담한 2인용 원목무늬의 아담한 식탁을 두기 위해 안 그래도 좁은 거실을 더 비워내야 했다. 벽에 세워져 있던 작은 의자와 화분, 고흐의 해바라기 액자를 우선 구석으로 옮겼다. 컴퓨터 책상 옆에 있던 낮은 서랍장 두 개를 하나는 침실로 하나는 다시 건조기 옆으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겨우 공간을 마련하니 딱 식탁 놓을 자리 하나 남았다.
“역시 트렌드를 따라가는군. 재택근무 시대에 가구가 많이 팔리고 있단다”
엄마는 나보다 세상 소식에 빨랐다. 코로나가 세상을 잠식해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거리두기를 위해 집을 지켰고, 그 와중에 가구 수요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식탁이 좁은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도 밝은 원목무늬 덕분에 집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동백이와 동거를 시작하고 하루도 방해받지 않은 식사 시간이 없었는데 식탁은 그런 내게 평온한 식사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컴퓨터 책상이 따로 있지만, 나는 식사 시간을 위한 온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배달음식을 시켜먹더라도 대충 설렁설렁 차려 먹고 싶지 않았다. 깨끗한 테이블에 정갈한 반찬들을 준비하고, 따뜻한 밥과 국을 예쁜 그릇에 두고 매 식사 시간마다 나 자신을 최대한 대접해주고 싶었다. 맛없는 음식을 먹거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는 것이 나를 홀대하는 것 같아서 어려운 시기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이 식탁에 잡동사니를 두지 않겠다 다짐했다.
오랜 자취 생활에도 꼬박꼬박 요리하기란 쉽지 않아서 매번 배달 음식 혹은 외식으로 식사를 하곤 한다. 재택근무라 시간이 비교적 여유롭긴 하지만 여러 식재료를 관리하고 매번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하고 적당한 시간을 계산하여 삼시세끼를 꼬박 챙기는 일은 유명한 TV 프로그램이 있는 것처럼 웬만한 의지로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배달 음식을 즐기고 반찬가게를 종종 찾고 있다.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정착한 반찬가게는 매번 두 통 씩 챙겨 사 오는 매운 고추지부터 달큰한 호박나물, 고사리나물, 시금치나물, 바삭하게 잘 구워진 고등어구이, 좀처럼 배달시켜 먹기 힘든 소고기 뭇국까지 집밥이 그리운 내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준다. 한아름 가득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도 한 끼 배달음식 값만큼이라, 큰 부담 없이 몇 끼를 따스하게 보낼 수 있다.
햇반도 각양각색으로 출시되어 잡곡밥부터 찹쌀로 만든 밥, 보리밥, 흰쌀밥, 우무 밥까지 나름 기성 식품을 사더라도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잘 갖춰진 구성을 제공해주곤 한다.
만족스러운 배달 라이프이지만 그래도 못내 마음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일회용 쓰레기 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깔끔하게 배달용기를 씻고 분리수거를 하여 내다 버려도 이미 일회용 용기를 쓰는 일에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나의 양심은 충분한 가책을 느낀다. 다만,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어려운 소상공인을 위해 조금이나마 외식 소비를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일시적으로 면죄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일이다.
우리 집은 어렵게 살 적부터 먹고 싶은 것은 꼭 먹기 위해 노력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라는 말을 온 가족이 착실히도 지켜왔다.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지 못하는 엄마가 가끔 소고기를 먹고 싶어 하실 때에도 큰 고민 없이 우리 세 식구는 집을 나섰고,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내가 갈비를 먹고 싶을 때에도, 맞벌이에 매번 음식 하기 쉽지 않은 엄마를 위해서도, 각종 기념일을 온전한 가족답게 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 가족은 외식을 즐겼다. 서울로 와서 혼자 살게 된 이후에도 난 우리 가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고작 80만 원 월급을 받을 때에도, 먹고 싶은 것이 생기면 다른 것을 아끼고 아껴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챙겨 먹었다.
TV를 틀면 여러 먹방 프로가 한창이다. 삼시세끼, 맛있는 녀석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등의 프로그램을 나는 고전을 읽는 것처럼 본 것을 또 돌려보고 돌려본다. 질리지도 않는다. 덕분에 살도 많이 쪘다. 깜깜한 밤 불 꺼진 거실에서 다양한 음식들이 즐비한 TV 프로그램들이 나의 공허를 채워준다. 가끔은 TV 속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처럼 같은 메뉴를 배달시켜 함께 먹는다.
이렇게도 먹는 것을 좋아하면서 어릴 적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는 왜 그렇게 앉기 싫었는지,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굼뜬 엉덩이를 억지로 들고 밥상머리로 가 앉던 것이 엊그제 같다. 하루 종일 추운 날씨, 더운 날씨 가릴 것 없이 밖에서 고생하다 들어와 겨우 차린 밥상을 나는 무던히도 미루고 또 미루었더랬다.
“엄마, 동백이가 주인 닮아서 밥을 안 먹어. 먹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안 먹어. 미안해. 엄마. 밥 가지고 협박해서.”
뒤늦은 후회와 자책을 담아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엄마는 웃겨 죽는 단다. 그땐 맛있고 따뜻한 밥 한 끼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이리도 그리운 일이 될 것인 줄 미처 몰랐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이 모든 것들도 벗어나고 싶어 몸서리치고 있는 이 일도, 관계도, 집도, 이 도시도, 언젠가 이리도 그립게 느껴질까.
역시나 집밥이 트렌드다. 너도 나도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을 고민하고 멋들어진 한 상차림을 선보이며 공유하고 있다. 그 와중에 수미네반찬시즌2를 시청했다. 오늘의 반찬은 파김치동태조림.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오빠와 할머니, 그리고 내가 함께 살던 흙집에서 야식으로 종종 먹던 구수한 누룽지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할머니만의 달큰한 부추김치가 떠올랐다. 옆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가 늙으면, 할머니 세대에 해주시던 저런 음식들을... 제대로 맛을 낼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할머니가 가시고, 할머니의 부추김치 레시피가 세상에서 사그라졌다. 할머니 살아계실 적에 새언니가 그렇게도 배우겠다고 할머니 뒤꽁무니 쫓아다녔었는데, 할머니는 그저 당신이 해주시는 것 먹으라셨다. 언제까지고 해 주실 수 있을 것처럼.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할머니의 부추김치를 그리다가 그 시절 함께하던 시절을 그리다가, 또 엄마를 그리다가, 내가 사라지면 어떤 레시피가 사라질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모든 것으로부터 훌쩍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정돈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