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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찌네형 Aug 08. 2023

을질....그 두 번째 이야기

예전에 글 중에 을질에 대해 적은 적이 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글이긴 하지만, 지금의 여러 가지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을까 해서, 조금 더 적어본다.


대한민국 사회는 고도의 발전을 경험해 왔고, 빠른 변화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떤 조금 더 나은 시스템을 몸에 익히는데도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으며, 또한 그런 흐름에 나만 빠진다는 것에 쉬이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을질이 그러하다. 

물론 아직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이 갑의 눈치를 보며, 갑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눅 들고 있는 불편한 상황일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말하지만, 꼭 그렇지많은 않은 이면이 있다는 것에도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선생님과 학생에서, 선생님은 갑이 아니다. 회사의 상사와 부하에서, 상사는 더 이상 갑이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남자와 여자에서 남자가 강자, 여자가 약자가 아니다. 물론 지금으로부터 조금 시간을 되돌려 본다면, 이러한 프레임을 그려보는 것이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의 가학적인 폭력을 온전히 받아야만 했던 그 잔혹한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렇고, 부하의 보고서를 하늘 멀리 날려버리고, 온갖 비속어와 성적인 말들로 부하직원들을 대하던 그 옛날 상사들을 떠올린다면, 필시 그러할 것이다. (*난 예전에 신임임원이 해당부서에 와서 저녁에 2차를 가는데, 내 직속상사가 나한테 여자 경리사원을 꼭 데려오라고 시켰다. 기분나쁜 기억이지만 너무 오래 남아있다)


하지만 사회는 변했고, 서로서로가 최대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큰 흐름에서 이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여유는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 


일전에 한 변호사와 군인과 함께 이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변호사는 딱 잘라 [지금은 약자가 주인인 세상]이라고 말했다. 모든 초점은 약자를 중심으로 되어 있지만, 그 약자가 진짜 약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성숙하지 못하다고 했고,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맞장구치며, 당시 소령이었던 다른 친구는 [내가 빨리 군복을 벗어야지. 요즘 젊은 친구들과 그 부모들의 항의전화, 그리고 상부의 말도 안 되는 조치들을 보면.... 내가 더러워서...]라고 했다. 그 군인친구는 결국, 불혹의 가까운 나이에 시험 봐서 군무원이 되었다. 


그래. 좋게 말해 을질이지만, 내가 피해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갑의 입장도 헤아려주길 바란다. 회사에서 을질의 한마디에 잘못하면 소위 [갑]에 위치에 있는 상사의 모가지가 날아갈 수 있다(*실제로 꽤 많이 봤다.. 요즘은 더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갑]은 상당한 고통 속에서 살 수 있다. 부모님들의 항의전화나 민원으로 그 선생님은 목숨도 끊을 만큼 고통 속에 살고 있을 수 있다. 왜 그런가.. 결국 억울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월비상.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은 오뉴월 더운 날씨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그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서로서로는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산다. 옆에 사람이 쓰러지면 구하려고 하는 행동에 대해 [아직은 온기가 남은 세상]이라고 누군가 평하겠지만, 그러한 행동이 도리어 나에게 화살이 되어 날아오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며 사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다. 그러한 시스템으로,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깐, 나도 그렇게 해야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점점 나만 피해안가면 된다는 그러한 기조가 대한민국에 스며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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