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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May 08. 2024

12. 남편의 휠체어

남편을 살리려 밀라노로 갑니다. - (1)

남편은 어느 날 장애인이 되었다.


나의 멋진 '비엔나'오빠, 그 자상하고, 유쾌하며, 무대에서 소름 돋게 노래하던 나의 슈퍼 히어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우린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늘 용기 주고, 기도해 주던 나의 태양 같은 남편.

우리 아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담아 노래 불러주고, 머리맡에서 매일 저녁 기도해 주던 최고의 아빠가 말이다... 세상 가장 사랑한다고 외치던 우리 아들의 사진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괴롭고 무서웠다. 

 

살면서 다른 곳은 몰라도 머리만 안 다치면, '뇌'만 안 아프면 된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건강하던 남편이 다른 곳이 아닌 '뇌'에 치명적 손상을 입게 될 줄이야...  




1~2주면 된다던 뇌졸중 집중치료실에서 3주를 꼬박 채우고, 드디어 재활병동으로 옮겨도 좋다는 주치의의 소견이 내려왔다. 혈압, 심박 등 안정을 되찾았으나 여전히 콧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침대에 누워서 모든 것을 해결하며, 실어증으로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못하니 인지장애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조차 힘들었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엔 없었다.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위해 기도했다. 

입으로 물을 마시고 밥을 먹을 수 있기를.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기를. 걸어 다닐 수 있기를. 우리 가족을 알아보고 인지가 돌아오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뱃속에 있는 '태양이'(태명)이가 아무 장애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다. 


이젠 본격적인 재활치료가 시작된다고 하니 큰 산 하나를 넘어 원하던 학교에 입학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재활병동에 들어서자 복도에 휠체어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휠체어마다 환자의 병실 번호와 성(姓)이 적혀있었다. 그중 가장 복잡하게 생긴 특수휠체어에 'Signor Lee'라고 적혀있었다. 순간 지난 3주간 꾸역꾸역 참아왔던 눈물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뱃속 아이를 위해 울면 안 되고, 남편의 빠른 회복을 위해 그 앞에선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려 안간힘을 써왔었다. 그런데 그만 그 휠체어 앞에서 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유모차와 휠체어를 동시에 밀어야 한다는 괴로움에만 빠져있었던 참으로 나약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역시 작은 고난에도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때 보다 조금은 단단해졌으리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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