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2)
2020년 9월 12일.
남편이 쓰러지고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K방역, 대한민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선 불가능도 가능했다. 융통성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님 이탈리아 사람들 마음이 약한 건지, 방역 시스템이 약한 건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막 입국한 임신부를 PCR검사 결과지 하나만 확인하고는 그 철통 같은 병원문을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 항공사 체크인, 입국심사 등 남편을 보러 오기까지 많은 산이 있었다. 그중 가장 높고 불가능처럼 느껴졌던 '병원'이라는 산을 가장 쉽게 오를 수 있었던 건 정말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었을까?
STROKE UNIT [뇌졸중 집중치료실]
병원 관계자들은 주저 없이 나를 남편의 병실로 안내했다. 멀리 Corea (꼬레아, 대한민국)에서 임신한 아내가 언제 도착할지 오히려 기다린 눈치였다. 남편을 눈물 없이 마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떨리는 온몸을 겨우 붙잡으며 병실에 들어섰다. 파란색 커튼 너머 침대와 하얀 시트가 살짝 보였다. 심장이,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커튼을 살짝 걷자 거기 진짜 내 남편이 누워 있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보고는 살짝 미소가 번졌다.
"자기야... 나 왔어.... 나야.."
"......"
"나... 누군지 알겠어?"
"......"
"많이 놀랬지?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어?"
"......"
울음을 겨우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을 걸지만 아무 대답이 없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그랬을까? 남편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눈물이 많았다. 분명 나를 보면 폭풍 같은 눈물을 쏟아낼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나를 향해 그저 미소 짓는 모습에...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을 보며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정말 큰일 났다!'
애써 웃으며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자기야, 이제 괜찮아. 금방 좋아질 거야..."
"......"
"여보, 나 배 많이 나왔지? 태양이(태명) 좀 만져봐요. (불룩한 내 배에 남편의 손을 끌어당겼다.) 태양아~ 아빠야~ 아빠 손 느껴지지?"
눈물샘이 고장 난 것이 틀림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남편과 눈물의 재회도 잠시, 곧 주치의 선생님을 만났다.
MRI 결과를 보니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진 남편은 왼쪽 뇌 손상 범위가 상당했다. 긴급시술은 잘 끝났으나 재활병동으로 가기 전까지 1~2주는 집중치료실에서 컨디션 보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우측편마비로 인한 '보행장애', '삼킴 장애'와 '인지기능장애', '언어장애' 등이 후유증으로 남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가며, 입으로 밥은커녕 물도 마실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 같은 모습으로 내 눈앞에 누워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