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5개월간 홀로 지내다 쓰러졌고, 골든타임을 훌쩍 넘긴 채 발견되었다. 다행히 의식은 되찾았지만 온갖 후유증이 남았다. 당시 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에 속하는 7개월 차 임신부였다.
다른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루빨리 남편을 구하러 밀라노로 가야 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2020년 9월. 예상대로 유럽행 항공편은 선택사항이 많지 않았다. 그중 가장 저렴하고 빨리 출발하는 항공편 편을 찾았다. 핀란드 경유, 밀라노행 편도 티켓으로 2장 발권했다. 감사하게도 시어머니께서 같이 가주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든든했다. 코로나 그리고 임신 중반이 넘은 시기라 항공사와 각 공항, 체류국마다 요구하는 게 많고, 복잡했다. 뭐든 빠르고 편리한 대한민국조차 이 시기엔 뭐 하나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서류들이 하루 만에 모두 준비되었다.
이틀간 몇 차례 밀라노 담당의사가 남편과 영상통화를 연결해 주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누워있었지만 살아있으니까... 숨 쉬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고 또 믿었다. 아내 그리고 엄마를 보면 금방 회복될 거라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뇌졸중'을 뇌졸'증'이라 잘못 알 정도로 이 질환에 정말 무지했었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약속 없이, 눈치 빤한 만 3살 꼬마 이태리(첫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떠나려니 가슴이 미어져왔다. 첫아이라 그랬을까? 나와 떨어져 본 적이 없이 밤엔 꼭 엄마품에서 잠이 드는 아이에게 이 상황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밤마다 영상으로 기도해 주던 아빠도 연락이 없고, 우주 같은 엄마의 부재를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빠를 만나러 이탈리아에 간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잠든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눈물에 잠이 깨지 않게 서둘러 얼굴을 돌렸다. 친정엄마를 꼭 끌어안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하지 못하고 이른 아침 공항으로 향했다.
꽤나 깐깐한 외항사 탑승체크인을 무사히 마쳤다. 공항까지 동행해 주신 H목사님, 친정아빠, 시이모님 모두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다. 그렇게 위로와 눈물 섞인 배웅을 뒤로하고, 두 여인의 한 남자를 살리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고요하고 적막이 흐르는 공항 풍경이 내 처지만큼 낯설었다. 퉁퉁 붓고 퀭한 얼굴의 어머님. 둘 다 지쳐있었다. 처음 타보는 핀에어(핀란드 국적기)는 생각보다 좋았다. 비행기 타고 하는 여행을 유독 좋아했고, 호불호가 명확한 기내식도 난 언제나 맛있고 즐거웠다. 탑승객은 총 5명. 그런데 내 인생에 이토록 슬픈 비행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헬싱키를 경유하여 무사히 밀라노 집에 도착했다. 아직 햇살 뜨거운 9월 초인데, 집안은 온기 하나 없이 차가운 기운만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남편이 혼자 감당했을 그 공간을 찬찬히 둘러봤다.
가지런히 널어 둔 빨래들,단무지용 무를 사다가 맛깔나게 담가놓은 깍두기. 제법 깔끔했지만 5개월간 홀로 지내며 집안 구석구석 남겨둔 남편만의 흔적들을 보며 눈물이 지체 없이 흘렀다.
한국행 특별 전세기를 고민고민하며 신청하던 3월의 기억, 말펜사 공항에서 유난스럽게 했던 남편과의 눈물의 이별, 복선처럼 느껴지는 쓰러지기 하루 전 자동차 사건... (혈관처럼 복잡하게 설계된 순환로에 우리 차가 갑자기 멈추었고, 말도 안 되게 오랜 시간 견인차를 기다렸다. 마치 남편의 혈관이 갑자기 막히고 오랜 시간 쓰러져있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것처럼 말이다...) 모든 순간들이 머릿속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가슴이 미어질 것 만 같았다. 차가운 집안 공기 속에서 찢어지는 마음과 정신을 함께 붙잡아야 했다.
우리 집 거실 피아노위에 놓인 남편의 흔적
그리고...
우리 집 부엌 식탁에 먹거리와 장바구니가 있었다. 앞집 Fabio 가족이 저녁 늦게 도착할 나와 시어머니를 위해 김밥을 만들어 놓고 당장 필요한 생필품과 과일까지 챙겨다 놓은 것이 아닌가... 남편이 쓰러졌을 때 구급차를 불러준 생명의 은인이자, 우리와 5년간 이웃으로 함께했던 Pizzarelli(Fabio의 Surname) 가족. 나중에 알게 되는데 Fabio의 아내 Luana가 남편이 쓰러지면서 깨진 그릇과 토사물 등으로 엉망이 된 우리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빨래까지 해주었다고 했다. 그날 늦은 저녁 난 도통 입맛이 없었지만 그 눈물 젖은 김밥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Dear my Pizza. Family,
나의 사랑하는 이탈리아 이웃사촌 Pizza. Family - Fabio & Luana. 그리고 인형같이 예쁜 공주님들. Martina & Marilù. 꼭 한국에 초대해서 너희 가족에게 받은 사랑을 갚고 싶어. 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