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양이' 이야기
고요한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한 손으로는 만삭 배를 만지작 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 한 장을 썼다.
아침이 오면 나의 감정, 나의 운명, 나의 삶이 어쩌면 내가 단 한 번도 예상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를 테니까... 이렇게 여유 있게 생각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멀쩡한 정신조차 없을지도 모르니까.
'사랑하는 태양이에게'로 시작해서 '사랑해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로 끝나는 러브레터를...
'태양이'는 둘째 아이의 태명이었다.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한 2020년 초에 내 품에 와서 그해 말에 태어났다.
정신적 충격, 불안, 트라우마와 육체적 힘듦, 고됨, 피로 등으로 믹스된 최악의 임신기간을 보냈다.
새 생명을 기다리는 설렘보다는 기형아 검사결과대로 장애아로 태어나는 건 아닌지, 아님 지난 2개월간 겪은 일이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몇 시간 뒤 태양이를 만나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내 운명의 양갈래 앞에서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 한 건, 남편과 아이까지 장애가 있다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 말씀을 묵상하며 2020년 11월 어느 쌀쌀한 날 아침 9시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
By 이제 만 3.5세가 된 태양이의 시점에서, 태양이의 엄마가 쓴 일기
큰 폭풍우가 하나 지나간 것 같았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남편을 데리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2주간 격리를 마치고 남편은 재활병원에 나는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있었다.
도저히 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수면마취를 요청하고 모든 것을 친정아빠께 맡겼다.
유일한 보호자로 최전방에서 불안했던 아이의 탄생을 홀로 마주해야 했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지...
그리고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떴을 때 기적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 엉켜있던 새까만 근심 덩어리가 한순간 다 풀리며 아주아주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쓰러진 뒤 처음으로 마음껏 아파하며 흘린 눈물이었고,
태양이가 건강하게 태어남에 한없이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태양이는 그렇게 소중한 생명 이상의 의미를 갖고 우리 곁에 왔다.
기적이고, 기도의 응답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되어 매일 우리에게 그분의 살아계심을 상기시켜 주며 행복을 전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