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ya May 29. 2024

01. 눈물, 기도, 간병이 네게 준 태교라 미안해

나의 '태양이' 이야기

고요한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 

한 손으로는 만삭 배를 만지작 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편지 한 장을 썼다. 

아침이 오면 나의 감정, 나의 운명, 나의 삶이 어쩌면 내가 단 한 번도 예상해보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를 테니까... 이렇게 여유 있게 생각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갈 멀쩡한 정신조차 없을지도 모르니까.



'사랑하는 태양이에게'로 시작해서 '사랑해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로 끝나는 러브레터를...



'태양이'는 둘째 아이의 태명이었다.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한 2020년 초에 내 품에 와서 그해 말에 태어났다. 

정신적 충격, 불안, 트라우마와 육체적 힘듦, 고됨, 피로 등으로 믹스된 최악의 임신기간을 보냈다. 

새 생명을 기다리는 설렘보다는 기형아 검사결과대로 장애아로 태어나는 건 아닌지, 아님 지난 2개월간 겪은 일이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몇 시간 뒤 태양이를 만나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내 운명의 양갈래 앞에서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 가지 확실 한 건, 남편과 아이까지 장애가 있다면 나는 도저히 감당할 없을 것 같다는 것.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이 말씀을 묵상하며 2020년 11월 어느 쌀쌀한 날 아침 9시 나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엄마 뱃속에서 5번의 비행기를 탔어요. 처음 밀라노에서 한국으로 코로나를 피해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땐 내가 엄마 몸속에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엄마가 너무 힘들었대요. 음식 냄새가 다 너무 싫고, 코로나라서 자유롭지도 못했고, 아빠와 떨어져서 지냈으니까 불안했나 봐요. 호르몬 때문에 더 그랬겠죠?

그래도 엄마는 우리 이태리 오빠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세상 귀엽고 사랑스러운 3살 꼬마였다고 해요.) 덕분에 웃고 행복하게 지냈대요. 

더운 여름날 엄마는 내가 잘 있나 보려고 산부인과에 갔어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가 다운증후군 아가로 태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했어요.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그때 엄마가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부터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나를 위해 엄청 많이 기도하셨어요. 밥도 며칠씩 안 먹고 계속 기도하셨대요. 

그런데 어느 날 밀라노에서 혼자 지내고 있던 우리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온 가족이 너무 놀라고 큰 슬픔에 빠졌어요.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아빠를 데리러 다시 밀라노로 갔어요. 점점 커져서 엄마 배에 동그랗게 들어있는 나와 함께요. 그렇게 아빠를 구하러 이탈리아에 갈 때 2번, 다시 한국에 올 때 2번 이렇게 비행기를 또 탔어요. 아시아, 유럽, 중동 대륙들을 넘어서요.


엄마는 밀라노 병원에서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밤마다 배를 문지르며 나에게 예쁜 말을 해줬어요. 그리고 가끔은 눈물, 기도, 아빠의 병간호가 제게 해준 태교라고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나는 할아버지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빠는 아주 쪼금만 사랑해요.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아주 많이 해주시지만, 아빠는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나는 아빠를 잘 몰라요. 아빠는 내가 태어나던 날에도 치료받고 있었대요. 내가 갓난아기일 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목욕을 시켜준 적도 없고, 내가 코~ 잘 수 있게 자장가를 불러준 적도 없어요. 내가 아빠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동화책을 내밀면 아빠는 그냥 씩 하고 웃고 말아요. 아빠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아빠는 한쪽 팔로만 날 안아줘요. 그래서 다시 내릴 때 나는 너무 불안하고, 아빠가 너무 꼭 끌어안아서 아프기도 해요. 


그런데도 우리 엄마는 아빠가 최고 멋지고, 우리 오빠도 아빠를 엄청 사랑한대요. 나도 아빠를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가 나를 두 팔로 편안하게 안아주고, 나한테 책도 읽어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도 아빠를 아주 많이 사랑할 것 같은데...

 

그래도 엄마 몰래 내 입에 젤리를 넣어주는 나의 고릴라 아빠, 사랑해요 ♥ 



By 이제 만 3.5세가 된 태양이의 시점에서, 태양이의 엄마가 쓴 일기




큰 폭풍우가 하나 지나간 것 같았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남편을 데리고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2주간 격리를 마치고 남편은 재활병원에 나는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있었다. 

도저히 아이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수면마취를 요청하고 모든 것을 친정아빠께 맡겼다. 

유일한 보호자로 최전방에서 불안했던 아이의 탄생을 홀로 마주해야 했던 아빠의 심정은 어땠을지... 


그리고 정신이 돌아와 눈을 떴을 때 기적이 내 눈앞에 있었다. 


"태양이,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손가락, 발가락 모두 정상입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 엉켜있던 새까만 근심 덩어리가 한순간 다 풀리며 아주아주 뜨거운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쓰러진 뒤 처음으로 마음껏 아파하며 흘린 눈물이었고, 

태양이가 건강하게 태어남에 한없이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태양이는 그렇게 소중한 생명 이상의 의미를 갖고 우리 곁에 왔다. 

기적이고, 기도의 응답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되어 매일 우리에게 그분의 살아계심을 상기시켜 주며 행복을 전해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픔'은 '브랜드'가 됩니다. 2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