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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Jun 05. 2024

02. 선물 같던 날의 악몽(1)

하나님이 내게 1년이란 시간을 선물해 주셨다고 생각했다.

태양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몇 개월간의 기억이 별로 없다. 

극도로 불안했던 '출산'이라는 큰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나름의 안도감 속에서 그동안 긴장했던 내 몸은 작은 기억조차 하기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큰 충격과 많은 일을 겪은 탓인지 그 무렵 읽고 쓰는 행위도 어려웠다. 코로나로 병문안이 힘든 시절, 남편은 재활병원에 1년을 입원했고, 간병은 오롯이 시어머님의 몫으로 돌아갔다. 감사하게도 남편과 관련된 모든 것은 시댁에서 책임져주셨다. 

난 두 아이의 육아를 친정집에서 하며 육체적 힘듦으로부터 많이 해방되었었다. 닥쳐올 앞날이 막막했지만, 눈앞에 하루하루는 평온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소박한 행복 속에서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 약한 숨을 후후 불며 삶을 붙잡고 있었다.


2021년 9월.

남편이 쓰러지고 1년이 되던 달. 인지기능이 점점 회복되자 남편은 병원생활을 힘들어했다. 워낙 바깥활동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면회도 안 되는 입원생활은 감옥과 같았을 터. 고민 끝에 통원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가족품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꼬박 1년간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오른쪽 팔과 손가락움직이지 않았고, 말은 겨우 몇 마디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혼자 걷고, 인지기능이 많이 회복되어 카페에서 음료 하나정도는 혼자 주문할 있게 되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가을날.

온전히 우리 네 식구만 친정집 근처로 나들이를 갔다. 태양이가 태어나고 처음이었다. 차 창문밖 파란 가을하늘이 어찌나 예쁜지 웃으며 눈물이 나왔다. 그날 그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아빠, 엄마, 5살 오빠, 9개월 아기 태양이.

누군가에겐 지극히 평범하고, 너무도 쉬운 일이겠지만, 우리 가족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고, 눈물이 날 만큼 감사가 넘치는 외출이었다. 미약하던 희망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서 곧 활활 타오를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인지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아이들 체험공간으로 들어갔다. 큰아이는 몇 번 와 본덕에 신이 나 벌써 저만치 앞서 들어갔다. 나 역시 한껏 들뜬 마음으로 태양이를 예쁜 의자에 앉혀놓고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남편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빨리 밖으로 나가자는 몸짓을 했다. 놀란 마음에 물어도 대답 없는 남편을 향해 외쳤다.


"왜? 왜 그래?"

......


다급하게 건물 밖으로 나가는 남편을 따라 태양이를 안고, 기저귀가방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의 표정과 눈빛이 이상했다. 말을 하지 못하니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 몸에 닭살이 막 돋아나 있었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여보, 왜 그래? 힘들어?"

......

"구급차 부를까?"


남편이 초점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태양이를 받아 안아주었던 것 같다. 정신이 없었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119를 불렀다.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남편에게 물을 가져다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순간 정말 내 주변에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건물 안에 있던 큰아이가 엄마아빠가 보이지 않자 밖으로 나와 뭐라 뭐라 쫑알거렸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았다. 나라도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다. 


"여보! 잠깐만 있어봐. 금방 구급차가 올 거야. 괜찮지? 괜찮은 거지?"

"태리야, 잠깐만. 태양이 옆에 잠시만 있어줘. 아빠가 조금 아픈 것 같아서 그래."


  

남편이 어딘가에 걸터앉을 수 있게 자리를 옮겼다. 그 순간 남편이 의식을 잃고 내 눈앞에서 쓰려졌다.




사진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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