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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려라하니 Jun 25. 2024

일상에서 얻다 1

아 귀


아 귀


화려한 조명 아래에 홀로 구석에 있는 그것은 어두운 그림자를 자아내었다. 하얀 스티로폼 위에서 회색의 겉감을 덮고 있는 색다른 형상은 차가운 비닐 시트로 싸여 있었다. 꽃무늬는 아니지만 작은 장식이라도 있었으면 나으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비닐 위에는 오직 스티커들만 정돈되지 않고 몇 겹이 너저분하게 붙여있었다. 가격표 만 원이라 적혀 있었으나 그 위로 여러 번 수정이 있었다. 결국 사천 원이라는 숫자가 두드러졌다.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었음에도 저절로 손을 뻗었다. 어떻게 이를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사천 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집었다. 낮은 가격에 눈길을 끌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어 누구라도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열대 구석이라는 위치는 조명도 반사시켰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어내지 못했다.


빛을 품지 못하면 빛을 낼 수 없는 법. 지난날 빛을 품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아귀 스티커에 붙여져 장바구니에 담겼다. 예전의 나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다른 이들과 같이 있었지만 불편한 마음을 가지며 어울리지 못했던 모습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이러할까. 아귀가 몸에서 갈라지며 새어 나온 희미한 핏자국이 나에게 붉은 얼룩처럼 길게 번져 흘렀다. 들려진 장바구니 안에는 단 하나의 물건밖에 없었지만 길을 걷는 동안 손이 무거워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생각은 점점 더 길게 늘어졌다. 내가 만든 인연들에게서 상처를 받았고 외로움을 느꼈다. 같이 있어도 왠지 혼자인 듯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얼굴에는 웃는 가면을 썼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우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응답을 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아니라는 반대의 말들로 끊임없이 소리쳤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는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 선홍빛의 혈관들을 시꺼멓게 만들어 온몸을 휘저었다.

남들은 좋은 직장이라며 축하를 보냈다. 경력단절 후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나는 우러러보는 듯한 어감으로 말을 건넸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만든 소속과 안정이라는 욕망은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되었다. 피라미드의 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의 수고는 점점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그 위치에 있는 이들과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내가 잘하면 어려움은 줄어들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원래의 색을 감추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그들만을 찾아 걸었다. 튀지 않은 색으로 내 몸을 감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노력해도 결국 나는 구석으로 밀려났고, 소속이라는 틀 안에서 내몰렸다. 처음부터 내 노력은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존재였다. 남겨 놓았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거친 성향이 드러났다. 처음에 하얀 속살을 품었던 아귀도 바다에 살아남기 위해 거치고 회색빛 껍질로 덮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집 앞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조리대 앞에 섰다. 아귀를 꺼냈다. 여전히 차가운 그 모습이었다. 굵은소금을 뿌려 물에 씻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쳤다. 콩나무와 미나리를 냉장고에서 꺼냈고, 얼음 속에서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는 미더덕도 있었다. 햇고춧가루는 한 움큼 작은 언덕처럼 옆에 놓였다. 주방 형광등 아래 사방으로 흩어진 빛들이 이들을 비추며 모여들었다.

재료들이 본래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동안 내 감정도 조금씩 변했갔다. 축 늘어진 아귀의 덩어리들이 이제는 조금씩 살아나는 듯 느껴졌다. 나 자신과 닮은 모습을 한 그들을 선택한 순간은 이미 희미해졌다. 하나의 요리로 완성시켜 식탁에 풍요를 가져다 올려놓았다.


​내가 하는 행동이 평범할 수 있다. 이 보통의 행동이 결코 하찮은 것은 아니다. 남들의 행동에 빛을 품지 못했던 아귀는 나라는 단 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기억은 깨어져 부서지고 파편처럼 일상에 어지럽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미성숙한 생각들이라는 것을 식탁 위에서 알았다.


시간과 상황은 다르지만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바로 마음이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마음에 따라 행동도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점차 바뀌어져 가는 것이다. 아귀가 가져다준 미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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