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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려라하니 Jun 26. 2024

일상에서 얻다 2

그놈들


그놈들


그 놈들이다. 내 옆으로 분홍색 속살을 드러내고 헐 거 벗은 채 지나갔다. 그들의 채취가 찰나의 공간에서 흩날린다. 하나가 아니다. 여럿이 얽히고설켰다. 그들은 고개를 떨군 채 나보다 저만치 앞서 도로 위를 달렸다. 매끈하지 못한 도로에서의 작은 진동이 그들의 두꺼운 살을 뚫고 흔들렸다.

뜨거운 아스팔트가 녹아들 것 같은 한 여름의 오후, 나는 도로 위에서 그놈들을 만났다. 그들의 울부짖음은 트럭의 소음이 되어 요란하게 나를 지나쳤다. 목적지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철제 우리 속에서 체념한 듯 가만히 있기만 할 뿐 움직임이 없었다.



회색빛으로 가득한 길에서 그들이 본능적으로 뿜어대는 빛깔은 눈에 선명했다. 어린아이들이 익숙해하며 읊어대는 낱말카드의 사진과 글자처럼 나는 반갑고도 큰 소리로 외쳤었다.

"우와 돼지다."

하지만 곧바로 이런 내 행동이 경솔했다는 생각을 만들었던 것은 바로 트럭 맨 뒤에 있던 돼지의 절망적인 눈빛이었다. 나를 보며 날카롭게 쏘아대었던 것인지 아니면 햇살의 뾰족함 때문이었던 건지 나는 눈을 찡그렸다. 나는 세상 마지막 여행을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었다.



이 날 저녁, 나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인간,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식탁에는 숯불에 잘 구워진 돼지고기가 눈앞에 놓였다. 낮에 보았던 그들의 모습을 망각한 채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뜨거운 불길에 이리저리 뒤집혔다. 불꽃이 지휘할수록 불판 위 지글거리는 소리는 커졌다가 작아졌다했다. 적당히 그을린 갈색 겉면에는  광택이 돌아 윤기를 자랑했다. 두꺼운 고기조각에 숯불의 향이 스며들어 그윽하고 깊은 향기를 품었다. 육즙과 함께 달콤하기도 하고 고소하기도 하며 쌉싸름한 맛이 혀끝에서 소용돌이쳤다.



고기를 다 먹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제야 낮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배가 불러 포만감은 곧바로 미안한 감정을 만들었다. 그들의 고통이 식탁의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부른 배를 잡고 나는 인간의 이기심이 이렇게도 잔인한지 새삼 깨달았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뭐든 한다. 돼지가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나의 만족을 위해 순간 잊어버렸다. 눈에 띄게 선명한 살점은 오히려 불판 위 제일 뜨거운 곳으로 옮겨버렸다.


인간의 이기심은 이렇게 단순하고도 잔인하다. 나의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존재의 고통을 당연시 여기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어두운 그림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내일이면 다 잊는다. 잔혹한 이기심을 외면하면서 무감각이라는 자신의 감정을 끌어내어 덮어버린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하여 나의 이기심을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오늘 만난 돼지들을 떠올리며 내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잠시나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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