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친구들과 『Olive, Again』을 같이 읽고 있다. 일주일에 한 챕터씩 읽기가 계획인데 미루는 성격이라 금요일 오후쯤 되어야 아! 올리브! 하고 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숙제가 급한 초등학생처럼 바쁜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하지만, 소설 자체가 갖는 이야기의 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휘리릭 빨려 들어간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58쪽) 



이 구절이 좋았다. 올리브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잭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영화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올리브의 생각이 그대로 표현되는 장면.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올리브의 생각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상황. 그런 순간이 좋다. 전능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과 생각, 계획과 예상 그 밖에서 마치 인형 같은 주인공을 내려다보는 순간.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사야지! 하고 결심했다.  


소설은 흔히 가볍고 쉬운 이야기라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역사의 격랑’, ‘이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화와 타협’ 같은 거대 담론을 주제로 삼지 않으면 더더욱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예전 학교 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고, 먼 도시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과 사별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이제 더는 혼자 살 수 없어 요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이 모든 과정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 이런 경험들은 모두 하찮게 여겨진다.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간으로서의 불행과 행복은 이런 작은 순간에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친구 중에 엄마를 집에 모시고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돌보거나 저녁을 챙겨드리는 친구들이 모두 넷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울 때, 그때 느끼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모든 일을 사랑과 도리, 효와 애정의 문제로만 설명한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 그 모든 무거운 짐을 껴안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딸, 며느리, 손녀는,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불평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이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은 일이고, 효심이 부족해 생기는 마음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 이생을 살고 늙어가고, 그리고 죽음을 준비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이 좋았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고, 그래서 또는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건 다른 인간의 관심과 애정,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손길이라는 걸 말해줘서 좋았다.  



좋았던 또 하나의 구절은 바로 여기다. 


잠시 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 가지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잰이 그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는 그만의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는 숱한 비밀을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비밀은 전혀 나쁠 게 없다고, 그는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189쪽) 



만나자마자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해결책을 찾는다기보다는 고민의 ‘토로’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된다. 고민을 넘어 쉽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헉! 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져도 차분히 그 이야기를 듣는다. (단발머리의 고민 상담소 : 비밀 보장) 내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이라 내게 말하는 것일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 마주 앉아 가만히 비밀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웬만큼 비밀을 털어놓은 후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저요? 저, 뭐요? 제 고민이요? 아니, 제 비밀이요? 그니까? 네? 작은 거밖에 없어요. 제 고민은 다 자잘하고. 아… 제 비밀이요? 


비밀이라.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온 세상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도 무척 많은데. 하지만 내게도 한두 개의 비밀은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비밀은 아니지만, 지난한 과정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비밀인 비밀. 난 누구에게도 그 비밀을, 비밀들을 말하지 않았다. 글로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면,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면, 94세쯤에 비밀과 비밀들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내렸던 바보 같은 결정과 그로 인한 파장,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과 그래야만 했던 결정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후회에 대해 쓰고 싶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쳤던 수많은 밤과 밤처럼 어두웠던 낮과 눈물의 기도들과 내 기도의 응답에 대해 쓰고 싶다. 94세쯤에 그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하지만 그전에는 말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다. 내 비밀은 그냥 남겨두고 싶다, 나만의 것으로. 

 


버니가 수잰을 위로해줄 때, 앞으로 그녀가 간직하게 될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밀의 책임은 네가 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때, 좋았다. 수잰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한 버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비밀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버니가 허락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작가의 이전글 스팀 청소기가 선사하는 세계와 어머니 마음이라는 핑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