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생활자 Aug 31. 2020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아야지

약 2주 전, 지역 내 동선이 화려한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는 마을 주민 다수가 참여한 행사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 지역은 쑥대밭이 됐다.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조용한 시골 마을 안에서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지냈는데, 이 작은 마을 안에서 마트도, 식당도, 카페도 모두 불편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일자리에 딱 5일째 출근하던 날이었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열흘 가까이 또다시 일을 쉬어야만 했다. 내가 일하는 장소 또한 지역 내 확진자 다수 발생을 원인으로 무기한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암울했던 열흘이 지나고 다시 출근이 시작됐지만, 방문객이 없기에 나의 업무도 멈춰버렸고, 대부분의 시간을 대기 중으로 보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업이 멈춰버린 이후, 6개월이 지났다.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과외를 시작하기도 하고 에어비앤비를 할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 마땅한 것이 없다. 딱 한번 진행했던 과외는 거리두기를 위하여 중단해야 했고, 에어비앤비를 고려하자니 투자비용만큼의 수익을 낼만큼 우리 지역 내 숙박을 이용하는 방문자는 많지 않았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제법 우울하게 지냈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도 집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웠다. 딱 한번 지인을 위해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긴 했지만,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 때문에 그 이후에는 외출을 삼갔다. 처음엔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면서 돌파구를 찾았지만, 마음이 심란해지자 그마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은 대부분 TV를 틀어놓고 귀를 시끄럽게 한 채로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시간을 보냈다. 글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그 결심이 실천되는 게 왜 이리 어렵던지. 


그렇게 TV를 틀어놓은 채로 귀를 혹사하던 어느 날은 배우 나문희 님이 화면에 나왔다.  그녀의 나이는 80세. 새로운 영화의 홍보를 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갖 매체의 인터뷰를 하루 종일 소화하는 일정이었다. 그녀는 스케줄에 앞서 미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두려운 마음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 옆에는 18년째 그녀와 함께 하는 중년의 매니저와 엄마를 조심 스래 지켜보는 큰 딸. 80세라는 나이에 버거운 일정이었는데, 그 둘은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매끄럽게 운영했다. 입맛이 없지만 케이크를 먹게 하고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가 아닌, 그녀가 좋아하는 머리스타일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의 일정을 무사히 치렀다. 



혼자 TV를 보며 찔끔찔끔 울었다. 그녀의 나이 앞에 나의 힘듦이 무색했다. 80세 앞에 나의 6개월은 별게 아니었다. 환갑에 겨우 매니저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노령의 여배우가 인터뷰를 하며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힘들다고, 이제 늙었다고 얘기하면서 모두를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수고했다며 함께 한 스텝들에게 5만 원씩 현금을 건넸다. 한 번도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모두에게 조금씩 관심사를 얘기했다. 갖고 있는 에너지는 분명 많지 않을 텐데, 눈도 번쩍 뜨기 힘든 연약한 할머니의 의연함 앞에 나는 부끄러웠다.


여전히 힘든 마음은 내 안에 있다. 자꾸만 예기치 않은 순간에 눈물이 찔끔 난다. 하지만,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가끔은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어질 1년, 혹은 2년은 내가 살아갈 수십 년 중의 1년일 뿐이다. 지금의 어려움을 너무 무겁게 감당하지 말고, 덤덤하게 보내야지. 좋아하는 것을 하고, 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아야지. 힘이 들 때는 숨기지 말고, 힘들다며 웃어야지. 그렇게, 오래오래 산 할머니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