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오래전 여행을 함께 한 손님의 전화가 왔다. 남편이 출장을 갔다니, 여행을 할 만한지 궁금했나 보다. 내년엔 여행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예방접종자의 경우, 여행을 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의지이고 절차상 복잡해졌을 뿐, 이제 여행의 통제는 무의미함을 말해주었다.
뻘쭘했던 걸까, 응원을 해주고 싶었던 걸까. 그동안 잘 지냈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잘 지내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했다. 참 많이 힘들었다고, 겨우겨우 살았다고. 그는 또 그동안 잘 버텼다고 말했는데, 나는 이어서 말했다. 아니라고, 나는 잘 버티지 못했다고, 너무 힘들어서 몇 번을 무너졌고 아이는 이 상황을 못 받아들여서 많이 변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도 미안해서, 이런 말만 하게 되어서 사람을 많이 안 만난다고. 물어보지 않으면 내가 먼저 그동안의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고,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래그래 하면서도 그 사람은 참 많이 당황스러웠겠지.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생각했다. 하루 정도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렇다. ‘그 회사는 잘 버텼다고. 그 회사를 그만큼 버티게 하기 위해서 우리 가정은 너무 힘들었다고. 그 회사가 버틴 만큼 우리 가족은 많이 무너졌다고. 남편은 회사를 선택했고 나는 가정을 선택했다고. 그 가정이 쓰러질 것 같아서 온 몸으로 버티고 버티고 있다고. 그래서 잘 버티지 못했다고.’
근 2년을 생활비 한 푼 받지 못하고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공공근로 알바와 과외로 부족함을 채우며 살고 있다. 내 명의의 대출을 받아 두 명의 직원의 급여를 조금 삭감한 채 주고 있으며, 월세와 관리비를 내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직원들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가족도 부양하지 못하면서. 지금의 이 사실에 더 이상 불만을 갖지도 다툼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지금의 선택을 나는 평생 마음 한 편에 담고 살겠지.